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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킬러문항 카르텔’…변별력이 망국병의 원인


입력 2023.06.30 04:04 수정 2023.06.30 04:04        데스크 (desk@dailian.co.kr)

혁명적 입시 개혁, 대학 서열화 끝내야!

초고난도 공포 마케팅 학원, 강사 퇴출 당연

학생도 부모도 교사도 교수도 못 푸는 문제를 왜?

수능은 단순 검정 자료, 변별력 집착 말아야!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중략)….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위 두 발췌문은 교육부가 소위 킬러 문항의 예로 뽑아서 보여 준 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시험의 지문(地文, 시험에서 문제를 풀기 위한 바탕이 되는 글)이다. 수능이 철학 시험인가?


이 지문에 대한 문제 하나는 “(나)의 필자의 관점에서 ㉠을 평가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이다. 5지선다 답문도 마찬가지로 추상적이어서 정답이라고 할 게 사실상 없다. 부모는 물론 교사도, 교수도 손을 들 수밖에 없는, 틀리기를 원하는 문제다.


이런 초고난도 문제가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통령 윤석열이 ‘핀셋’ 지적을 함으로써 알게 됐다. 야당과 여당 소속 내부 총질 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박광온은 “교육 참사”라고 또 참사 타령을 불렀고, 당 대표 이재명은 “(대통령의 가벼운 입으로) 교육 현장이 쑥대밭 됐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반윤(反尹) ‘부자(父子)’인 유승민과 이준석은 “교육의 교 자도 모르는 사람이…. 대치동과 목동도 위험해졌다”라고 거들었다.


위 지문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자그마치 11매 분량이다. 또 다른 헤겔 철학 킬러 문제보다는 덜 난해하고 덜 현학적인 번역 용어로 돼 있는 문장이 저 정도다. 그런데도 저런 걸 없애라는 게 문제다라고?


초고난도 수능은 교육 이권 카르텔의 먹이다. 26조원 규모의 독버섯 망국병 사교육 시장이 입시 지옥과 저출산을 낳고 있다.


“교육 이권 카르텔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라고 한 윤석열의 질타는 지나치지 않다. 도대체 고등학생들이 철학 기초도 아니고 심리 철학, 동일론, 기능주의 같은 것들을 왜 알아야 하는가?


시험은 교과서 밖에서 낼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폭넓은 독서와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건 중요한 공교육 방식이다. 시험을 교과서에 있는 내용으로만 출제해야 한다는 건 한국식의 편협하고 획일적인 발상으로서 아주 잘못된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도 그렇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 학생들이 학원에 가나? 그런 학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교육 의존과 맹신이 교육 개혁을 가로막는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도 사실상 공범이다. 그들의 일류병이 학원 산업을 번창케 한다. 학원들은 “킬러 문제 하나가 (서울대) 당락을 결정한다”라는 공포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학원 총수가 2만4000개, 카페의 2배이자 편의점의 3배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카페 공화국, 학원 공화국이다. 공부 안 하는 젊은이들과 어른들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불쌍한 어린 학생들은 학원으로 보내져 찍기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교과서 안이건 밖이건 지식은 학생이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해야 자기 것이 된다. 그러므로 교육 당국과 학원, 일타 강사들은 교육을 망치는, 분쇄와 퇴출이 마땅한 사회악 연결 고리들이다.


철학보다는 기후 변화, 인공 지능 같은 걸 출제해야 한다. 미래의 주인공들이 꼭 알고 생각해야만 하는 주제들이다. 그 지식과 문제의식은 평소에 많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가능하지, 학원 다녀서 되는 게 아니다.


윤석열은 이번에 대단히 중요한 교육 개혁을 킬러 문항과 교육 이권 카르텔이라는 구체적인 용어로 시작했다. 문재인 전 정권 잘못 바로 세우기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걸어야 할 작업이다.


혁명적 수준의 입시 개혁이 궁극의 과제인데, 대학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일부 사립대들의 입시 부정을 걱정해서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 그건 검찰이 사후에 수사해 처벌하면 된다.


주요 대학들의 양식과 사명감을 믿고 입시 자율화의 기치를 올려야한다. 수능은 지원자의 객관적 검정 자료로만 활용하고 필기시험(또는 작문)과 면접은 대학별로 필요한 인재를 뽑는 방식을 허용하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 사회 고질병인 학벌주의도 타파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공무원과 대기업 회사원들이 학력이 아닌 실력과 인성, 경험으로 뽑힌다면 일류대 졸업장의 빛이 서서히 바랠 수밖에 없다.


변별력 족쇄에서도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상대 평가를 위해 존재한다. 서열화다. 학생들을 이 억지, 장난 변별력 시험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창의력을 키우도록 하자.


인재를 판별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등수가 아니다. 대한민국 학교와 학부모들은 이 등수에 너무 집착한다. 다른 아이는 몇 등인지 왜 관심을 갖나?


변별력이 망국병의 원인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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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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