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합의 안 됐는데 공탁했다고 선고유예…피해자 의사 반영 없는 공탁 신중히 판단해야"
"성추행 사건 선고유예 나오는 경우 드물지만…의도적 추행 아닌 '같이 놀자'는 의미로 본 듯"
"공탁한 것과 하지 않은 경우 동일하지 않아…피고인 '공탁 안 했다면' 선고유예 어려웠을 것"
"가해자 20대라는 점에서 또래의 일로 본 듯…50대가 10대 추행한 것과는 다른 경우에 해당"
휴가지에서 처음 본 10대 여성 3명 뒤에서 갑자기 어깨동무하고 팔을 주무르며 추행한 20대 남성에게 벌금형의 선고유예가 내려졌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자가 여러명이고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피고인이 형사공탁을 하지 않았다면 선고유예 이상의 중형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1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2단독 박현진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27) 씨에게 벌금 300만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이날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9월 24일 오후 11시 36분께 제주 서귀포시의 한 도로에서 나란히 길을 걸어가던 10대 여성 3명을 발견하고 뒤에서 여성 2명 사이로 다가가 '어디 가느냐'며 어깨에 팔을 감싸는 등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A 씨가 휴가차 찾은 제주도에서 길을 가던 피해자들에게 이른바 '헌팅(일면식없는 남에게 교제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식으로 술을 마시며 놀자고 권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엘엔에스 김의지 변호사는 "피해자와 합의가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형사공탁했다는 이유로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한 것은 형이 매우 가볍게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여러명이고 미성년자인 점 등을 고려하면 추행의 정도가 덜하다고 해도 선고유예는 과하다고 본다"며 "이런 사례 때문에 피해자 의사 반영이 없는 형사공탁에 대해 법원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일선에서는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탁출입금을 거부 하겠다는 취지로 서면을 내기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건양 최건 변호사는 "일반적인 강제추행 사건에 비해 가벼운 형량이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사건이 선고유예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재판부는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추행하려고 한 게 아닌 피해자들에게 '같이 놀러 가자'는 차원에서 일어난 터치로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재판부 입장에서도 공탁이 된 경우와 안 된 경우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공탁했다는 자체가 죄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의미"라며 "이번 사안에서도 공탁이 양형에 참작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공탁을 안 했다면 선고유예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아마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을 성적인 접촉이라기보다 '술 한잔하러 가자'라는 의미에서 한 행동으로 본 것 같다. 피해자분들이 10대라는 점이 민감하지만 이런 경우 가해자의 나이도 중요하다"며 "가해자 역시 20대라는 점에서 재판부가 '또래의 일'로 본 것 같다. 50대가 10대를 추행한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곽 변호사는 "공탁은 실무적으로 본다면 피해변제의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합의는 해주지 않아도 공탁금은 대부분 찾아간다"며 "피해자와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공탁마저 양형에 도움이 안 된다면 피고인들은 '전관대우' 변호사를 찾아가는 등 엉뚱한 데 돈을 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