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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평화' 공고히?…"이용만 당해" [군사합의 5년 ①]


입력 2023.09.17 08:00 수정 2023.09.17 08:00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군사합의, '소극적 보장' 성격

현상유지 원하는 양측의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

현상변경 원하는 北엔 성립 불가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자료사진).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8년 9월 19일 체결된 남북 군사합의에 깊숙이 관여한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지난 6월 펴낸 '평화의 힘'에서 '문재인 정부가 군사합의를 통해 소극적 평화를 공고히 했다'고 자평했다.


남북 군사합의 체결 이후 비무장지대(DMZ)에서 단 한 건의 군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효과'가 입증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2022 국방백서' 기준으로 총 17차례나 발생한 북한의 위반 사례를 감안하면, 소극적 평화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평가다.


'현상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군사합의를 '현상 변경' 세력, 즉 적화통일 추진 세력과 맺는다는 건 "이용당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면(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
韓美, 91년부터 10차례 '보장'
"北, 韓美 의도 몰라
불안 떤다는 건 변명
적화통일 의지 너무 강해"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연구원 주관 포럼에서 안전보장(assurance) 조치를 적극적 보장과 소극적 보장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미국의 한국 방위처럼 '같이 가자'는 게 적극적 보장이라면, 소극적 보장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는 평가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군사합의는 좋게 보자면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한 우리의 소극적 보장 제시"라며 "약속 중에서도 약한 약속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극적 보장은 양측이 △현상 유지를 전제로 △안보 딜레마를 완화하고 싶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할 때만 긴장완화 등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평가다.


결국 적화통일이라는 현상 변경을 목표로 하는 북한과 '공격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한미가 각종 합의 및 성명 등을 통해 1991년부터 총 10차례에 걸쳐 △전술핵무기 철수 △연합훈련 유예 △재래식 및 핵무기 공격 의사 없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등의 소극적 보장을 제공한 바 있는 만큼, "북한이 우리(한국)와 미국 의도를 몰라 불안에 떤다는 건 변명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가 북한에 제공한 소극적 보장이 예외 없이 '실패'로 귀결된 것과 관련해 "지난 70년간의 역사적·객관적 사실과 행태, 발언 등의 총합체를 보면, 북한은 침략적 의지가 너무나 강인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자신들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현상 변경 의지가 너무 강하다"며 "군비통제(군사합의)를 포함한 소극적 보장을 (북한에) 마련해 준다는 건 그냥 이용당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 당국이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따라 강원도 철원지역 중부전선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내 전방 감시초소(GP)를 철거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내용적으로도 문제 지적돼
"투명성·등가성에 어긋나"


전제부터 잘못된 군사합의는 군비통제라는 내용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거듭하며 서울 핵공격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우리 안보 역량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군사합의가 '군비통제 기본원칙'인 투명성·등가성에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전 초청연구위원은 투명성과 관련해 "군비통제는 서로 무엇을 가졌지 가급적 보여줘 오해를 방지하고, 근거 없는 위협감을 없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남북 군사합의는 '깜깜이 합의'다. 정찰활동을 금지하는 합의는 군비통제 역사 100년에 남북 군사합의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양측은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남북 10~40㎞ 이내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공중정찰 활동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군이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공중정찰 능력에 족쇄가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전 초청연구위원은 등가성과 관련해선 "GP(전방 감시초소)를 동수로 줄이면 안 되는 것"이라며 "30개 가진 쪽도 10개 줄이고, 20개 가진 쪽도 10개 줄이면 (결과적으로) 20대 10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실제로 남북은 군사합의에 따라 GP 11개를 시범 철거하기로 했고, 10개를 철거한 바 있다. 하지만 철거 이후 DMZ 내 GP가 한국군 60여개소, 북한군 150여개소로 알려져 '북한에 유리한 합의'라는 평가가 힘을 얻었다.


이렇듯 북한 입장에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합의지만, 북한은 17차례나 합의를 위반했다. 이따금 파기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남측에 고압적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북한은 어째서 저들에게 유리한 합의를 흔들어 댔던 걸까.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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