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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부활 노리는 日…비장의 무기는 '다바꿔' 전략


입력 2023.10.30 11:50 수정 2023.10.30 11:51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日, 과거 영광 되찾기 위해 다국적 기업 투자 유치·기술제휴 '총력'

中 굴기 저지하려는 美, 기술 지원으로 일본 파운드리 '부스트'

견제 받는 K반도체, 첨단 제품 시장 개척으로 치고나가야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관련 이미지. ⓒSK하이닉스

'반도체 강자' 영광을 되찾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 투자 유치에 속속 성과를 내는가 하면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해 민·관이 함께 나서며 한국과 대만을 크게 위협하는 모습이다.


이같은 행보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절시키고, 대만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의 의도와 맞물려 더욱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 격랑 속 한국 반도체가 위축되지 않으려면 자체 기술 역량을 개발하는 한편 첨단 제품 공급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R&D(연구개발)을 아우르는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속속 끌어내며 '반도체 부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지 기업 중심으로 뭉친 라피더스를 통한 파운드리 기술 역량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PSMC가 일본 혼슈 동북부 미야기현에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PSMC는 대만 3위 파운드리 기업이다. PSMC의 투자에 대해 닛케이 등 외신은 미야기현이 반도체 수요가 많은 자동차 공장이 몰려있고, 공업용수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도 구마모토현에 생산 거점을 짓고 있다. 구마모토 반도체 1공장은 약 1조4000억엔(약 12조원)이 투입되며, 내년 중 가동 예정이다.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미에현 요카이치 공장에 약 2조7000억원을 투자해 3D 플래시 메모리를 양산할 예정이다. 낸드 시장에서 각각 2위, 4위업체인 이들은 안정적인 낸드 생산을 통해 장악력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가하면 미국 마이크론은 히로시마에 차세대 D램 공장을 신축, 데이터센터,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에 필요한 첨단 D램을 내년 2월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전자의 경우, 일본에 연구개발(R&D) 시설 건설을 검토중이다. 반도체 생산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메모리(D램·낸드) 뿐 아니라 파운드리, R&D 등 반도체 '큰 손'들의 잇따른 투자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기업들의 일본행은 일본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서 강점을 가져 시너지가 예상될 뿐 아니라 정부 및 지자체가 발벗고 나서 막대한 보조금·인프라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은 시설 투자를 진행중이거나 계획을 밝힌 기업들에게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TSMC 구마모토 1공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4조3000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받을 전망이다. 추가 투자를 밝힌 2공장은 약 8조원의 보조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9000억원, 마이크론은 1조7000억원의 보조금 지원이 예상된다.


해외 기업 뿐 아니라 자국 업체에도 반도체 지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키옥시아, 토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 8개사가 뭉친 라피더스(Rapidus)가 대표적이다.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nm 공정 최첨단 파운드리 양산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대만, 미국에 이어 최대 파운드리 경쟁자로 등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라피더스 현황ⓒ산업연구원

일본이 적극적으로 공급망 재구축에 나서는 것은 반도체가 첨단전략물자로 떠오르면서 귀한 몸이 된 것도 작용하지만,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 반도체 강자 자리를 되찾아오겠다는 의지가 더 강력한 것으로 비쳐진다.


WSTS(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반도체 점유율은 1988년 40.2%를 기록하는 등 과거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이후 가파르게 점유율이 하락하며 2021년 기준 7.9%에 그치고 있다.


일본 반도체가 몰락한 것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를 인용, ▲미국의 통상압력에 따른 일본 반도체 가격경쟁력 상실 ▲디지털전환(DX) 지연 ▲일본 내 파운드리 부재 ▲일본 제조사들의 투자 부족과 한국·대만·중국의 국가적 육성 정책 등을 꼽았다. 일본의 반도체 장악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의 견제와 이를 대응할 전략 부족으로 일본 반도체가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다만 2020년대 들어 글로벌 상황은 달라졌다. 미·중을 중심으로 첨단 기술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은 자국 주도의 공급망 구축을 위해 일본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지정학적 우려가 없는데다, 미국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본 역시 공급선 다각화를 목표로 이뤄지는 미국의 지원을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과거의 반도체 몰락 과정을 교훈 삼아 일본은 과거 보수적 의사결정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술 공동개발 및 설비 투자 유치, 파운드리 육성에 나서며 자국 반도체 부흥에 힘쓰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주도와 반도체 재부흥을 위한 일본의 니즈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 IBM과 라피더스간 협업이다.


앞서 양사는 2nm 반도체 공정 개발을 위해 작년 말 파트너십 체결했다. 이를 두고 라피더스 아츠요시 코이케 CEO는 "일본이 다시 한 번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필수적인 국제 협력"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 추이(1986~2021년)ⓒ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같은 일본의 공격적인 반도체 로드맵은 인프라 확대 뿐 아니라 대규모 인재 육성과 병행돼야 하는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 반도체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TSMC 공장 건설 부근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기술과를 신설하는 등 인재 양성을 위한 커리큘럼 정비를 추진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일본의 부상을 염두해 보다 촘촘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메모리 점유율이 독보적인데다 삼성을 중심으로 파운드리 육성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경계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을 메모리 못지 않게 키울 것을 목표로 세운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서버용 AI 반도체, 차량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 차세대 시장을 겨냥한 맞춤 기술을 발굴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라피더스의 타깃은 거대 시장이 아니라 일부 첨단 제품 양산이어서 TSMC·삼성과는 다르게 봐야한다"면서도 "삼성의 경우, 파운드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려면 최첨단 제품을 공급할 만한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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