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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도 산수가 아니다’ SSG 팬들이 뿔난 이유 [기자수첩-스포츠]


입력 2023.12.02 07:00 수정 2023.12.02 07:00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2차 드래프트서 '레전드' 김강민 이적하는 상황 발생

팀 전력을 너무 객관적으로 바라본 프런트가 벌인 참사

화가 난 팬들이 김강민 포토존에 구단 이름을 가렸다. ⓒ 뉴시스

SSG 랜더스 팬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지난달 29일, 랜더스의 홈구장인 인천 미추홀구 인천SSG 랜더스필드 앞 도로에는 팬들의 항의가 담긴 조화들이 줄 지어 세워져 있었다.


조화에 새겨진 문구들 역시 매우 과격했다. ‘인천 야구는 죽었다’를 비롯해 ‘23년 헌신했더니 은퇴종용, 타팀이적’ ‘인천야구 망치는 결정권자들, 팬들을 바보로 아는가’ ‘팬들을 기만하지 마라’ 등 간담이 서늘한 메시지가 구단에 전해졌다.


팬들이 뿔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팀의 레전드이자 은퇴 후 영구결번까지 거론되었던 김강민(41)의 어이없는 한화 이적 때문이었다.


SSG는 지난달 22일 비공개로 열린 2차 드래프트서 35인 보호명단에 김강민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한화가 4라운드에 지명하며 이적이 이뤄졌다.


김강민의 보호명단 제외는 객관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 납득 가는 부분이 있다. 40대를 훌쩍 넘겨 은퇴가 머지않은 선수보다 젊은 선수를 보호하는 게 더 나은 결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40대 선수를 설마 지명할까’란 판단도 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SSG 프런트는 김강민이 지명되고 난 뒤 벌어질 후폭풍까지는 계산하지 못한 듯 하다. 김강민을 보호 명단에 넣지 않았더라도 선수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협의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고, 심지어 비고란에는 ‘은퇴 예정’ 등의 설명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프런트는 오로지 김강민을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인천SSG 랜더스필드 앞에 펼쳐진 조화. ⓒ 뉴시스

김강민은 2001년 SSG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해 23년간 인천에서만 머문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커리어 전체가 매우 화려했던 것은 아니지만 짐승을 연상시키는 동물적 감각의 수비 능력과 결정적 순간 한 방을 터뜨려주는 명장면 연출 등으로 구단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 스포츠 구단은 오랜 기간 팀에 헌신한 레전드의 마지막을 예우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이가 많다고, 기량이 떨어졌다고 내치는 것은 감정이 섞이지 않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프로 구단은 팬들이 없다면 존속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어느 팀이든 ‘팬 퍼스트’를 부르짖는다. SSG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김강민과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었을 게 분명한데 SSG 프런트는 너무도 냉정하게 이를 끊어버렸다.


유명 일본 만화 슬램덩크에서는 경기 중 객관적으로 판세를 분석하는 윤대협에 대해 서태웅이 “바스켓(농구)은 산수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어쩌면 SSG 프런트도 산수 풀 듯 야구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성용 단장이 부임 1년 만에 물러났다. 야구 역시 산수가 아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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