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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해진 반도체 동맹?…韓 기업 부작용은 없나


입력 2023.12.14 11:49 수정 2023.12.14 11:49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으로 한층 탄탄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 평가

美 우호국인 네덜란드와의 '동맹'은 中 자극시켜 역풍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장비 생산기업인 ASML 본사에서 클린룸을 시찰하며 크리스토프 푸케(왼쪽 세번째) ASML 최고사업책임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반도체 동맹' 아래 발전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삼성전자와 네덜란드 EUV(극자외선) 장비 제조사인 ASML이 한국에 R&D센터 신설키로 하는 등 민간기업간의 성과도 도출했다.


이번 파트너십 강화는 한국이 최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미-중 갈등 속 '전략적 모호성'을 지켜야 할 한국이 미 우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과시한 것은 중국을 자극시켜 또 다른 부작용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네덜란드는 13일(현지시간) 양국이 정부, 기업, 대학을 아우르는'반도체 동맹(semiconductor alliance)'을 맺는다고 발표했다. 양 정상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반도체 가치 사슬에 있어 양국의 특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식하고, 정부·기업·대학을 아우르는 반도체 동맹 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양측은 경제·안보·산업 분야 양자 협의체인 '반도체 대화'를 비롯해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신설하기로 했다. 민간 기업간 협력도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ASML은 같은 날 총 7억 유로(약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을 연구하는 센터를 설립키로 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13일(현지시간) 열린 '한-네덜란드 CEO 라운드 테이블'에서 "ASML과 협력을 통해 EUV 장비의 생산성을 개선하고, 합작 연구소(Joint Lab)를 한국에 설립해 기술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도 ASML과 EUV 공정에서 전력 사용량과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기술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삼성과 SK가 앞다퉈 ASML과 협력을 강화한 것은 ASML이 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공급하는 글로벌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이기 때문이다. EUV 장비는 주문 부터 도착까지 18개월이나 걸리기에 1년에 만들 수 있는 수량이 제한적이다. 구입하고 싶어도 대기 기간이 길어 EUV 제조사는 '슈퍼 을'로 통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ASML과의 협력에 나선 것은 결과적으로 'EUV 노광장비의 안정적 공급'을 정조준한다. 최첨단 공정 경쟁에서 필수 장비로 꼽히는 EUV를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차세대 반도체 경쟁 결과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EUV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뿐 아니라 최첨단 메모리(D램) 공정의 핵심 장비로도 쓰인다. 수율 등을 고려하면 D램 14나노(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부터는 EUV 장비 사용이 필수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나란히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배석한 가운데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장비 생산기업인 ASML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와 ASML간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저전력 친환경 활용 기술협력 협약(MOU) 체결식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피터 베닝크 ASML 회장이 서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국빈 방문에서 '반도체 동맹', 'ASML과의 협력적 관계 구축'이라는 성과를 도출한 점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도 최대 고객사인 삼성과 SK가 있는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네덜란드간 화려한 동맹은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반도체를 두고 보란듯이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행보라는 지적이다.


미 규제당국은 바이든 정부 들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칩 수출통제 대상을 중국 뿐 아니라 중국 우호국인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으로 확대했는데, 우회 수출 경로까지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자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5nm, 7nm공정에서 양산한 노트북, 스마트폰을 줄줄이 내놓으며 '기술 굴기' 의지를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양측 갈등이 커지자 미국은 자국 주도의 공급망 정책에 한국이 참전할 것을 원하고 있다. 이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톱을 달리고 있는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국 요청에 호응해 대중국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 우호국과인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을 과시한 것은 자칫 한국 반도체가 중국 배척에 나설 수 있다는 시그널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은 최근까지도 미-중 갈등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처해왔다. 그러나 이번 '반도체 동맹'에 국가까지 나섬으로써 중국을 자극시키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이미 오랜 기간 삼성 등 국내 기업이 나서 ASML과의 관계를 구축해온 상황에서 정부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자니, 국가간 '반도체 동맹'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재용 회장이 작년 네덜란드로 건너가 ASML 경영진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점 등을 비롯해 삼성은 2000년대 들어 ASML과의 파트너십 구축에 공을 들였다. SK하이닉스 역시 2021년 4조7500억원 규모의 EUV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동맹' 이라는 기치 아래 이번에 반도체 기업들간 맺은 협약은 MOU(양해각서) 정도다. MOU는 정식계약 체결에 앞서 작성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한국-네덜란드간 파트너십 강화를 전제로 한 것인만큼 이번 MOU들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고 있지만, 얼마든지 상황은 뒤바뀔 수 있다. 동맹 수준의 관계 격상과 실제 결과물(MOU)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해 웨이퍼에 남긴 서명 ⓒ뉴시스

ASML이 국내 기업들과 비교해 대만, 일본 등과 훨씬 두터운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ASML은 대만에 재제조센터 등 공장 구축을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자중이다. 한국에는 화성에 2400억원을 투자해 뉴캠퍼스를 조성중인 것과 비교된다.


일본에는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공장을 건설 중인 홋카이도 주변에 ASML이 기술 지원 거점을 지을 예정이다. 일본은 라피더스를 통해 2nm 공정 반도체를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본 반도체 시장을 놓칠 수 없는 ASML로서는 인력 충원 등 지원 규모를 대폭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ASML은 과거부터 계속 교류해왔다. 이번 대통령 방문으로 갑자기 양측 관계 개선 계기가 마련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ASML에 들어가는 부품은 미국, 일본 등 세계 첨단기업 부품이 들어가는 매우 큰 장비"라며 "이런 생산 구조를 감안할 때 ASML로서는 그간 해왔던 대로 장기 협력이 필요한 기업들을 우선순위로 고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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