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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이 문재인·임종석 특검을 주장했더라면 [정치, 만약에]


입력 2023.12.29 05:00 수정 2023.12.29 05:00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野 특검 강행에 與 '尹 거부권' 건의

대비 기간 충분했음에도 똑같은 패턴

'대통령 거부권'에 기댄 與 전략 부재

경남 양산 평산책방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뉴시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안이 결국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하고 표결 거부와 함께 민주당 규탄대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상된 수순이다. 여소야대 구성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민주당을 상대로 국민의힘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소위 '김건희 특검'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것은 지난 4월이다. 숙려기간 270일을 채워 연말에 특검법을 처리하고 내년 총선까지 이슈를 끌고 가겠다는 민주당의 중장기플랜이었고, 국민의힘도 정확히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9개월의 기간 동안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 보냈다.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이 안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월부터 다수의 원내 관계자에게 "기온이 낮아지고 있다. 김건희 특검이 곧 자동상정되는데 대비책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하나 같이 '김건희' 이름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깜짝 놀랄만한 묘수를 숨겨 놓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비책은 없었고, 대통령 거부권에 기대는 상황만 반복된 셈이다.


되돌아보면 반전의 기회가 없지 않았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유죄 선고가 대표적이다.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권부의 실세들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게 재판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필연적이었다.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김기현 전 대표가 만약 이 때 '특검'을 강하게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명분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최고권력자와 측근들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 사실이라면 이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반헌법적 중대범죄다. 연루자들은 사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거대 야당의 현직 국회의원이거나 내년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살아있는 권력'들이다. 공직자의 부인이 되기 전 개인의 주가조작 가담 의혹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된 검사들이 2년 동안 수사하고 기소조차 못했던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과 달리, '청와대 선거개입'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검찰을 향해 '윗선'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 한 장 낭독하고 하루 만에 끝낼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민주당의 특검 요구를 마냥 거부하는 모습이 아니라 맞불 카드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을 수사대상으로 하는 특검을 받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수용할 경우 당장 분당이다. 따라서 거부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부담은 상당 부분 덜 수 있었을 터다. 최소한 '특검을 회피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민주당 인사들의 입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국민의힘의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이 자신들을 소수당으로 한계 짓고 대통령실 눈치를 보며 대통령에게만 기댄 게 아니냐"며 "뻔히 보이는 민주당의 정략을 알고도 당이 똑같은 대응만 반복한 것은 무능함의 고백"이라고 질타했다. '막무가내' 특검 요구가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아니지만 "상대가 흉기를 들고 오는데 맨손으로 상대할 순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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