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정치사범 담당 재판장, 일거수일투족 보도되고…고소·고발도 무차별 제기, 스트레스 극심"
"국민적 의혹 생기지 않도록…법원 스스로 '재판 독립성'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브리핑해야"
"정치권, 정치사범 재판장 이름 거론하며 논평해서는 안 돼…여론으로부터 독립시킬 필요 있어"
"정치사범 재판장, 다른 사건보다 많은 업무 처리 중…재판만 몰두할 수 있게 여건 조성해줘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고(故) 김문기·백현동 특혜 의혹 발언'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장이 법원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언론에서 중요 정치사범 재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도하니 스트레스가 극심할 것이고, 담당 판사에 대한 고소·고발도 무차별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여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에서 국민적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정치적 사건에 대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브리핑한다면 법관들이 여론 눈치를 덜 보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의 강규태 부장판사가 내달 초에 있을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최근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 부장판사가 사의를 표함에 따라 사건 심리는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재판부 구성이 변경된 경우 후임 법관의 사건 이해를 돕기 위한 공판 갱신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의 범죄수익 은닉 혐의 사건을 심리하는 같은 법원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 역시 최근 법원에 사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위례 신도시 의혹을 담당하는 재판장도 사표를 냈는데 '여론 눈치를 보다가 부담스러워서 사표를 냈다'는 의혹을 받기 충분하다. 특히 언론에서 중요 정치사범 재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도하다 보니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이같은 사정을 모두 고려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법원에서 이들 법관의 사정을 모두 고려해주면 다른 재판부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에 온전히 배려해주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안 변호사는 "강 판사의 경우 학부 동기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증인만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50명의 증인을 부르고,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라며 "증인 불출석으로 공전되는 경우도 많아 강 판사 입장에서는 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겼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이 대표 재판 법관뿐만 아니라 다른 재판부들도 유명 정치인 사건을 맡으면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 정치권에서도 정치사범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 이름을 한 명 한 명 거론하며 논평하는 문화도 지양해야 한다"며 "동시에 법관들도 권력뿐만 아니라 여론으로부터도 독립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 변호사는 "재판부가 공명정대한 재판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 과정 하나하나를 모두 다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재판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사법불신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법원에서 국민적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브리핑하는 것도 여론 눈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중요한 정치사범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의 경우 다른 사건에 비해 방대한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법원에서는 그 판사에게 다른 사건을 배당하지 않고 그 재판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며 "담당 판사 실명이 재판 전에 미리 언론에 공개되고, 또 선고 이후에도 담당 판사에 대한 비판 등이 살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판사에 대한 고소·고발·진정 등이 무차별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판사들도 곤혹스러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판사들이 여론 눈치를 보고 유력 정치인에 대한 재판을 꺼린다면 삼권분립의 심각한 훼손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원칙마저 무너질 것"이라며 "사법부가 다른 기관들의 눈치를 보고 재판을 꺼리는 것은 삼권분립이 아니라 사법부가 입법부 및 행정부에 종속되어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도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샘)는 "최근 들어 극단적으로 여론이 분열되어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립하는 상황이 잦아졌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가 심해지며 법관들도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사건을 맡은 법관들이 여론에 휘둘리거나 일부 극성지지자들에 의하여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당에서도 본인들의 유불리에 따라 본인들 입맛에 맞게 법원의 재판을 해석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지지자들이 이를 수긍하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