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티브·페널티·거버넌스 개선안 모두 빠져
단발성 이벤트 아닌 장기적 체질개선 고민해야
새해 자본시장을 흔들었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윤곽을 드러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증시 부양 효과가 나타나긴 어려워 보인다. 상장사 스스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으면서 일시적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는 시장이 기대했던 세제혜택이나 공시의 강제성 부여 등 핵심 내용들이 쏙 빠졌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주주환원 계획을 공개하는 ‘권고’ 형태로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일본보다 정책 강도가 낮아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은 국내의 코스피와 코스닥에 대응하는 프라임·스탠다드 시장에 연간 1회는 관련 공시를 밝히도록 의무화한 바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고강도 대책이 기대됐으나 의무가 아닌 기업 자율에 맡기는 만큼 페널티의 부재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여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도 기대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다. 그간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감면, 상속세 인하 등 세제 혜택이 주요 유인책으로 거론됐지만 이번 발표엔 담기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매년 5월 기업 밸류업 표창을 진행해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가장 큰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가 제 값을 찾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밸류업 정책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이 제외됐다. 일본 증시가 30여년 만에 활황을 맞은 것은 작년부터 시행된 밸류업 정책 이전에 10년 전 아베 신조 내각이 추진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뒷받침됐다.
하지만 국내 증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방향성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지배구조 개선과 상속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설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국내 현행 세제 정책은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 대주주들이 승계를 위해 낮은 주가를 선호, 적극적 주주 환원을 꺼려해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매입한다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정부는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세제지원 등 추가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주가는 대외 환경과 유동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밸류업 프로그램만으로 주가가 오르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업가치 제고안을 강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 구체적 지원 내용에 따라 기업과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관건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성을 만들어주면서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단기적 배당 확대보다 지배구조의 장기적 체질 개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