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정기 주총 줄이어…주주환원·가치제고 요구↑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 마련하고 이사회 진입 추진도
최대주주와 손잡고 소송 추진 등 전략 다변화 ‘눈길’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적인 막을 올리는 가운데 행동주의펀드들도 보폭을 넓히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로 ‘밸류업’이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이 대응 전략을 점점 다변화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부터 각 기업별로 정기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과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행동주의펀드들의 움직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등 강력한 주주 환원정책을 요구해 왔는데 이번 주총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가 관심사다.
KCGI자산운용은 지난달 27일 주주환원 기준 미달 기업의 주총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행사하는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이달 주총부터 적용되는 이 기준은 피투자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자기자본이익율(ROE)·주주환원율 등이 내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이사의 선임 ▲재무제표 승인 ▲이사의 보수한도 승인 등 3개 안건에 대해 반대의견 행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같은 조치는 최근 발표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맞춰 구체적인 스튜어드십 실행을 위한 계량적 지표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 하겠다는 의지다.
당장 주요 투자회사인 고려아연의 이번 정기주총 안건에 대해서도 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회사측의 정관변경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예정으로 일반주주 입장에서 유리한 안건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찬성의사를 표시하기로 했다.
KCGI자산운용은 “그간 외부 의결권 자문기관에 의존해 의결권을 행사해왔으나 주주이익 관점에서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아쉬움이 있었다”며 “주주 가치 제고 관점에서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수립 실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새 기준을 적용할 경우 투자기업 중 약 50%이상 주총안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른바 ‘조카의 난’으로 경영권 분쟁이 펼쳐진 금호석유화학에서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와 손을 잡았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금호석유화학 지분 0.03%를 보유하고있는데 박 전 상무는 지분 8.23%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박 전 상무는 최근 차파트너스를 최대주주의 특별관계인으로 추가하고 자신의 자사주 지분 권리를 위임했다. 차파트너스는 이를 바탕으로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자사주 소각에 관한 정관 변경 ▲자사주 소각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등을 주주 제안하며 현 경영진 압박에 나섰다.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사회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러스톤은 최대 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29.48%)과 비교해 지분 격차가 크지만 “제안된 후보자들이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의 영업상황 개선 및 이사회 중심경영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경영 참여 의지를 본격화했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KT&G가 방경만 수석부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사장 후보로 낙점한 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로 대표 선임 과정에 적극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이상현 FCP 대표를 KT&G 사외이사 후보로 올리는 주주제안도 했다. 이와함께 KT&G 전현직 이사들이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에 활용하는 대신 재단·기금에 무상 증여해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끼쳤다며 주주대표 소송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한국계 안다자산운용 등 5개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삼성물산에 배당 증액과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제안을 했다. 오는 15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 해당 안건이 의안으로 상정된 상태다. 이들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과 보통주 4500원(우선주 4550원) 배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은 날로 활발해지는 추세다. 글로벌 기업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은 77개사로 지난 2020년(10개사) 대비 7.7배 증가했다.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이 실제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지만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의 경우 주주제안 통과비율은 각각 5.5%와 5.6%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20.2%로 늘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어 행동주의 펀드들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지 주목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지난 1월 17일 추진을 예고하고 지난달 26일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는데 일부 기업들에서 이를 전후로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주주 활동을 펼쳤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올해 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 등 7개 상장 금융지주사를 상대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금융지주사들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환원책 관련 요구 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올해 주총에서는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한 별도의 주주제안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7개사 주주환원율을 전년 대비 평균 4.2%포인트 인상하고 지난해 발표한 자본 배치 및 주주환원 정책 준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긍정 평가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을 상대로 사외이사 후보자 2명과 사내이사 후보자 1명 추천을 제안한 것 외에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자사주 소각을 비롯한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과 감사위원 선임 절차 개선 등을 요구해 온 KCGI자산운용도 이번 정기 주총에는 별도의 주주제안을 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금호석유화학의 사례처럼 최대주주와 손을 잡거나 KT&G 사례처럼 주주 대표 소송을 추진하는 등 압박 전략도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는 6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최종안이 발표되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업이 스스로 변화를 꾀하면서 행동주의펀드들의 대응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