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 압도적 과반으로 입법권 장악...동력 상실 가능성
세금 감면 지원 방안, 부자 감세 논리 반대 부딪힐 듯
정책 수정·재검토 불가피…합의·공감대 형성 ‘주목’
이번 총선이 야당 압승과 여당 참패로 귀결되면서 22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돼 정부가 추진해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추진해 온 자본시장 정책들이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커졌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전체 300석 중 60%가 넘는 19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금투세 폐지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해 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추진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연간 기준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과세하는 제도다. 당초 지난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주식 시장 침체를 우려해 여야 합의로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2년 유예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증시 개장식에서 금투세 폐지 추진을 발표하고 이어진 민생토론회에서 이를 공식화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금투세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만큼 정부의 추진 의지도 강력했고 여당도 이에 동참해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선거를 이끌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금투세 폐지를 반드시 해내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고소득층이라는 ‘부자 감세’ 논리를 내세워 폐지를 반대해 왔다. 폐지를 검토할 수는 있지만 2년 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 만큼 예정대로 내년부터 금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게 강했다.
이번 총선 결과로 야당이 압도적 과반을 차지하게 되면서 정부의 금투세 폐지 추진 동력은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금투세를 폐지하려면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한 데 의회 의석 구성상 쉽지 않아진 데다 우선 과제에서도 밀릴 수 있는 상황이어서 금투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현재 증권거래세가 있는 상황에서 금투세까지 도입되면 고액 투자자 이탈로 인해 자본시장이 더욱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여야가 모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대의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밸류업을 위한 조치들이 감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총론에서는 합의하더라도 각론에서는 이견이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최종 가이드라인은 이르면 내달 중 발표될 발표될 예정으로 정부는 이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세제 지원 방안을 검토해 왔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 환원을 확대한 기업의 법인세와 해당 기업에 투자한 주주의 배당소득세를 감면해주는 것으로 정책의 방향을 설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주 소각이나 주주배당 증가분에 대한 세제 혜택들이 지분 구조상 대주주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같은 세제 개편은 야당의 부자 감세 반대에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이다. 또 기업에 지원되는 각종 비과세 조치들도 국회 논의를 거쳐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총선 이후 계획해 온 자본시장 정책들이 야당의 국회 입법권 장악으로 가로 막힐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의회 구성에서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총선 후 입법을 전제로 추진하던 정책들에 대해서는 정책의 수정 및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 주식시장의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양당 간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 상당 부분 존재하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여야 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분야도 있기 때문에 돌파구는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상존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추진 동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배당소득 분리과세(조세특례제한법)와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감면(법인세법) 등 세제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선 패배로 인적 쇄신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그간 밸류업 정책을 이끌었던 금융당국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자사주 소각 시 이를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 감소와 기업들의 전기 대비 배당 증가분에 대한 세액공제 등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세제 지원은 기대감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향후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야권을 설득할 수 있는 ‘교집합’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의 세제 혜택은 강화될 전망이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인 투자자 이탈 가속화 등은 과도한 우려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ISA 계좌 납입한도를 현재보다 상향하고 납입 금액을 전액 비과세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 연구원은 “ISA 비과세 확대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주식 시장의 긍정적 요인들을 감안하면 개인 수급이 지속적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