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전 회장 연루 의혹 부당 대출 350억원
금감원 '우리은행 내부 통제' 실패, 엄중 제재
'책무구조도' 지주 회장 처벌 근거 마련 될까
우리은행에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일가와 연루 의혹이 있는 부당 대출이 발견되며 내부통제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통상적으로 배임이나 횡령 등의 금융사고는 실무진 급에서 발생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은행의 이번 사고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가 관련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우리은행에서는 최근까지도 수백억원대 횡령 사고가 잇따랐다. 사실상 우리금융의 내부통제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당국이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추진 중인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의 명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 금융사고 연달아...금감원 내부통제 당부 무색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손 전 회장의 친인척에게 수백억원 규모의 부정 대출을 내준 것으로 확인돼 금융감독원이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020년 4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총 454억원의 대출을 취급했다. 대출금의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대출까지 포함하면 616억원의 관련 대출이 실행됐다.
손 전 회장 취임 전에는 4억5000만원(5건) 수준에 그쳤지만 2019년부터 4년 동안 616억원(42건)까지 급증한 것이다. 손 전 회장은 2019년 지주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쳤다. 616억원의 대출 중 350억원은 부정 대출이었으며, 전체 대출 중 269억원은 부실이 발생하거나 연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은행은 올해 1월과 5월 관련 조사를 벌였으나, 손 전 회장과의 연루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자며 본부장 1명만 면직 처리하고 나머지는 감봉 등 내부징계만 했다. 금감원이 6월 현장조사를 난 뒤 지난 9일이 돼서야 문제가 된 직원들을 뒤늦게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금감원 측은 "금융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와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금감원은 법률 검토를 거쳐 제재 절차를 진행하고, 검사 과정에서 발견된 문서 위조나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부적절한 대출 취급 행위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입장이지만, 금감원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불과 한 달 전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18개 국내 은행 이사회 의장들을 만나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 우리은행 '반면교사'로 책무구조도 제출 빨라질 듯
은행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검사 결과 발표는 금융당국이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과 내부통제 강화를 독려하는 가운데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권 첫 타자인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시행 후 6개월 이내인 내년 1월까지 책무구조도를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은행 지주는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꺼리는 상황이다. 책무구조도를 미리 내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 담당 임직원이 곧바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도 불리는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직원들의 직책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문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이에 따라 관련 책무를 맡은 임직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책무구조도 도입 필요성이 강조되며 조기 제출에 속도가 날 전망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은 대부분 책무구조도 초안을 마무리하고, 최종 법률 검토를 받으며 마지막 작업을 진행중이다.
당국에서는 책무구조도 도입 시범 운영 기간을 10월 말이라고 정한 만큼, 늦게 내면 당국의 눈 밖에 날 것이라는 분위기다. 잊을만 하면 금융사고가 터지는 우리나 농협은행,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로 곤혹을 치룬 국민은행 등이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책무구조도의 실효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책무구조도는 지주사, 은행, 증권, 보험 등 개별 법인이 각사 CEO 책임하에 만들어 운영하는 구조다.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터져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은 은행장까지로 한정됐다. '책무에 사실상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회사 임원(대표이사 포함)'도 포함됐지만, 지주사 회장이 어떤 영향력을 끼쳐 금융사고가 발생했는지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책무구조도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지주 회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면서도 "이번 금융사고로 오히려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CEO의 책임을 묻는 범위가 더 확대되고, 이례적 상황에 대해서도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