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수출 연간 최대 448억 달러↓"
원·달러 환율 1400원대 '고공행진'
미국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수출·금융시장 등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출 부진은 물론 물가가 다시 뛰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권 안팎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악재로 평가된다. 앞서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은 2.5%, 한국은행은 2.4%다.
한은의 전망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은 1.3%, 2분기는 -0.2%, 3분기 0.1%다. 정부가 설정한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남은 4분기에 1.2%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열고 내수 경기 활성화 방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원을 다 투입했을 때 올릴 수 있는 잠재 성장률이 2.0%”라며 “충분히 2.0%를 상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미국 대선의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당선으로 10%의 보편관세가 부과되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1%포인트(p)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와중 수출업계도 비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 미체결국에 보편 관세를 10~20%p 추가 부과 또는 중국에 25%p를 추가 부과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분석했다. 그 결과 트럼프 당선 후 미국이 한국에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은 연간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수출 업계의 파장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반중 정책 강화로 인해 한국이 첨단 장비 수입이나 기술 협력에서 더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협력적 FTA 관계를 재정립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는 등 대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을 고려할 때 당분간 강달러 현상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 원·달러 환율이 1420원대로 오르는 ‘뉴노멀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이날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0.4원 오른 1396.6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전날 저녁 9시 28분께 원·달러 환율은 1404.4원까지 오르면서 2022년 9월(1411.2원)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고점을 찍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그만큼 원화 가치가 하락한다. 이는 원자재를 사들여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비용 절감에 집중하면서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또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직격탄을 받을 수 있다.
서민들의 부담도 가중된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로 이어진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더 떨어져 다시 강달러 현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환율이 금리 결정의 새 변수가 됐다며 금리 인하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정부는 향후 한·미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트럼프 당선인이 강조해 온 정책기조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며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선제적이고 빈틈없는 대응을 해 나가겠다”이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9월 경상수지를 발표하며 반도체 경기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호황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트럼프 공약이 향후 우리나라 통상 여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9월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111억20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지난 6월 이후 최대 흑자 규모다. 9월 기준으로 역대 3번째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무역수지와 통상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공약대로라면 우리나라 수출 여건에 부정적 요인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위기가 오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좋은 여건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1400원선까지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직접적으로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와 달리 제한적으로 봤다. 다만 수입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신 국장은 “우리 수출 경쟁력이 가격에서 품질로 많이 전환됐기 때문에 환율이 수출 증가에 기여하는 부분은 과거처럼 크지 않다”며 “다만 원유나 원자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오르면 수입이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나 무역수지가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환율이 수입물가를 통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망을 낼 때 많이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