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증감위, 兩 국유증권사 궈타이쥔안과 하이퉁 합병 공식 승인
두 회사 합병으로 총 자산 332조원 규모 초대형 증권회사 탄생
“월가 IB와 경쟁할 수 있는 투자은행 육성하라”…習 지시 기폭제
덩치 커졌지만 인력·자산통합 쉽지않아 시너지 효과낼지 미지수
중국에 대형 국유 증권사 간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공룡’ 증권사가 등장했다. 중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상하이(上海)시가 소유한 양대 증권사인 궈타이쥔안(國泰君安)증권과 하이퉁(海通)증권의 합병을 공식 승인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17일 보도했다. 상하이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는 궈타이쥔안 주식의 3분의 1을, 하이퉁 주식의 5분의 1가량을 각각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궈타이쥔안증권의 전신은 1992년 설립된 궈타이증권이다. 궈타이증권은 경영난 겪으며 상하이 맏형 증권사인 쥔안증권에 통합돼 궈타이쥔안증권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8년 설립된 하이퉁증권은 교통은행 산하 증권사업부로 출발했으나, 1994년 정부의 은행·증권 분리정책에 따라 교통은행에서 분리돼 독립했다.
상하이시 국자위 등 지방정부와 국유기업들이 지분을 분산 보유하고 있는 하이퉁증권은 창업 이후 성장가도를 달리며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상호변경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경영난에 빠지면서 상하이시 정부가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해 사실상 위탁경영에 들어갔다.
이번 양사의 합병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궈타이쥔안증권이 부실한 하이퉁증권을 떠안는 모양새다. 중국 금융데이터업체 완더쯔신(萬得資訊·Wind Info)에 따르면 궈타이쥔안증권은 안정적 수익을 낸 반면 하이퉁증권의 실적은 ‘롤로코스터’를 탔다.
2021년까지만 해도 궈타이쥔안증권과 하이퉁증권의 실적은 중국 증권업계에서 2·3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침없이 성장했다. 하지만 2022~2023년 하이퉁증권은 홍콩 자회사가 적자의 늪에 빠지며 수익성이 악화하는 바람에 2023년 실적은 업계 26위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합병은 궈타이쥔안이 신주 60억주 규모를 발행해 하이퉁 상하이 증시 상장주식(A주)과 홍콩 증시 상장주식(H주) 소유자와 교환해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국 온라인 관영매체 펑파이(彭湃)신문은 "중국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 'A+H' 양자 시장 흡수 합병"이라며 "중국 자본시장과 증권산업에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두 증권사가 합병되면 자산 1조 6800억 달러(약 331조 8000만원) 규모의 중국 내 최대 증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순자산만 3300억 위안에 달한다. 중국 업계 1위 중신(中信·CITIC)증권의 1조 5061억 위안, 2742억 위안을 가볍게 뛰어넘는 규모다. 다만 두 증권사 순이익은 합쳐서 104억 위안으로 197억 위안에 달한 중신증권에는 못 미친다.
두 업체의 합병 추진은 시진핑 주석이 2023년 10월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중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월가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몇몇 최고 수준의 투자은행(IB)을 육성하라"고 하달하면서 현실화했다. 중앙금융공작회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5년에 한 번씩 여는 중장기 금융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금융 관련 최고위급 회의다.
이듬해 2월 취임한 우칭(吳淸)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주석은 취임 한 달 만에 회의를 열고 5년 내 10대 우수 증권사를 키우고, 2035년까지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IB) 2~3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서방 중심의 초대형 IB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사실 중국이 미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글로벌 IB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대형 증권사 합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중국 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중국에는 2023년 말 현재 증권회사가 145개가 있고, 총자산은 11조 8000억 위안 규모다.
그렇지만 대형 증권사들 규모는 미 월스트리트의 글로벌 금융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 둥우(東吳)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 순자산은 380억 달러(약 54조 7000억원) 규모다. 골드만삭스(1169억 달러), 모건스탠리(990억 달러)에는 한참 못 미친다.
매출액도 중신증권은 85억 달러 규모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의 각각 5분의 1,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월스트리트 금융사에 도전할 초대형 규모의 증권사를 설립한다는 오랜 야망이 이번 합병으로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
두 증권사의 합병에는 상하이시 당부서기 출신인 우 증감위 주석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시 당 상무위원회는 2023년 12월 “선두 증권사가 M&A 및 재편에 나서 일류 IB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지원책을 내놨는데, 이 작업에 당시 상하이시 부서기로 일하던 우 위원장이 직접 ‘핸들링’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일류 IB를 육성하려는 배경에는 상하이의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10여년간 상하이시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잔뼈가 굵은 우 주석이 이를 추진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상하이 국자위는 궈타이쥔안과 하이퉁의 최대주주인 데다 두 증권사가 모두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합병 논의 중 발생할 수 있는 지방세수 등으로 인한 갈등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은 “서로 다른 지역의 증권사가 합병되면 각 지방정부의 세수 문제와 인허가 등의 문제로 복잡한데, 같은 지역 증권사가 합병하면 지방정부는 결정을 내리기 더 쉽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침체에 빠져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증시 부진과 자본시장 침체 역시 합병의 계기로 작용했다.
다만 궈타이쥔안증권과 하이퉁증권의 합병 법인이 덩치뿐만 아니라 실적 면에서도 압도적 1위를 달릴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차이신은 “양사가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하다”라며 “인력과 기관, 자산 모두 통합되기까지 업무량이 많고 난이도도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와 맞짱 뜨자”며 중국 내에선 결기를 내보이지만 양사의 합병은 결국 실적부진에 따른 구조조정의 성격이 짙다. 중국 증시가 지난 몇 년간 위축돼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고, 기업공개(IPO·상장)까지 뚝 끊기며 증권사들의 수익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내 증권사 50곳의 직원수는 31만 7400명으로 전년 말보다 6760명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 감원 규모는 팡정(方正)증권이 1381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신증권·궈신(國信)증권·중신(中信)건설투자·광파(廣發)증권·싱예(興業)증권도 상반기 500명 이상의 직원을 줄였다. 궈타이쥔안·하이퉁증권·중진(中金)공사·창장(長江)증권 등의 직원 수도 모두 100명 이상 줄어들었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중국 증권사의 합병 흐름은 급물살을 탔다. 다만 중소 증권사 중심으로 이뤄진 게 대부분이다. 궈롄(國聯)증권과 민성(民生)증권, 핑안(平安)증권과 팡정증권, 저상(浙商)증권과 궈두(國都)증권. 시부(西部)증권과 궈룽(國融)증권, 타이핑양증권과 화촹(華創)증권, 국신증권과 완허(萬和)증권이 합병한 게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하이퉁증권처럼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증권사에 흡수 합병되거나,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중소 증권사끼리 합병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된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4월 ‘자본시장의 고품질 발전 촉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M&A 및 조직 혁신 등을 통해 핵심 경쟁력을 높이고, 중소 기관의 차별화된 개발 및 특성화된 운영을 장려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