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신라 천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경주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회의를 넘어, 오랜 시간 고요히 숨 쉬던 경주의 역사와 미래 가능성을 동시에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찬란했던 황룡사와 첨성대의 기억 위에, 우리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 무대에 선명하게 새겨 넣을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APEC 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 우리가 철저히 준비한다면, 지금까지 ‘정치적 갈등과 시위의 나라’로 인식되었던 이미지를 넘어, ‘품격 있는 환대의 나라’로 도약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경주다.
무엇보다 APEC은 새로운 한국 정부, 즉 차기 대통령이 세계 앞에 처음으로 나서는 공식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어떠한 아젠다를 제시하고, 어떤 어조와 태도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소개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외교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세계 질서의 격변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한국은 동북아에서 가장 중립적이고 창의적인 평화의 중재자, 균형의 교량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이번 APEC은 그러한 한국의 자세와 가능성을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이며, 외교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소중한 무대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세계적인 행사가 끝난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 것인지 말이다.
의전과 만찬, 몇 편의 공동선언문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관광과 외교의 지평을 넓힐 문화적·경제적 유산(Legacy)으로 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경주를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관광도시이자, 교토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문화수도로 도약시키고자 하는 비전은 여기서 시작된다. 경주가 지닌 깊은 역사성과 풍부한 가능성은 이미 충분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정교하게 기획하고, 치밀하게 설계하며, 세계 앞에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주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 대한민국 관광의 미래 또한 새롭게 열린다. 정치 이벤트를 넘어 지역 경제와 국가 이미지까지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APEC의 유산을 남긴다면, 우리는 세계가 주목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를 위해 다음 네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APEC 2025는 대한민국 리브랜딩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번 APEC은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외교 리더십과 국가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할 결정적인 기회다.
정상 및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제공될 웰컴 키트, 야간 투어, 디지털 가이드맵 등은 단순한 환영 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APEC 이후에도 경주의 지속가능한 관광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경주의 환대는 감정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기획과 실행으로 구체화된 체험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 체험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마케팅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2. APEC은 차기 대통령의 국제무대 데뷔 무대다.
차기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가 어떤 태도와 언어, 비전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가에 따라, 향후 10년 외교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이 APEC 정상회의장을 사전에 방문하고, 초당적 지지와 협력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그것은 단지 정치적 제스처를 넘어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분열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3. 경주는 과거를 보여주는 도시가 아니라, 미래를 제시하는 도시다.
경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APEC은 경주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리브랜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를 위해 '경주의 밤'을 주제로 한 야간 경관 개선, 도심 가로 디자인, 주변 관광지의 연계 콘텐츠 개발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경주의 야경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경주의 서사와 정서를 비추는 브랜딩 자산이 되어야 한다.
4. '한국다움'은 지금 세계가 주목할 새로운 브랜드다.
'한국다움(Korean-ness)'은 한국의 정체성과 태도를 담는 개념이다. 이는 단지 전통과 예의의 미덕이 아니라, 갈등을 극복하고 사람 중심의 연대를 실현하는 자세다. 2021년 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방역을 통해 국격을 보여줬다. 이번 APEC에서는 회복과 통합의 모델로서 한국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극단주의의 확산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보여주는 ‘한국다움’은 새로운 희망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 말해야한다. 진짜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서사의 시작점은 경주가 될 것이다.
고경곤 지속가능관광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전, 대전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