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도착후 취재진들 질문에 답변 피한채 청사입장
청사 앞에선 보수단체와 노사모 회원들 시위 엇갈려
[기사대체 : 2009. 04. 30. 15:05]
“왔다”
30일 오후 1시 2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 앞에 버스 한 대가 섰다.
프레스라인 근처에 도열해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버스의 출입구에 쏠렸다. 검게 선팅된 버스 창문에는 계란 얼룩이 선명했다. 2분 정도 지나자 참여정부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인 문재인 변호사와 전해철 변호사, 김경수 비서관 등 변호인과 수행원들이 내렸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에 봉하마을에서 떠나기 전에 ‘면목없다’고 심경을 밝힌 이유가 뭡니까”
“면목없는 일이죠”
“현재 심경은 어떻습니까”
“(머뭇) 다음에 하시죠”
“100만달러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밝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노 전 대통령이 잠시 사진촬영에 응하다가 “나중에 하자”며 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상왕의 귀환’취재진의 질문공세에 “다음에” 말 아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자 ‘진보’와 ‘청렴’, ‘소신’을 강조했던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금의환향한지 1년 2개월만에 상경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 검찰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고서다.
“권력은 커질수록 위험”하고 “권신의 화는 총애에서 온다”던가. ‘상왕’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환은 권력의 쓴 뒷 맛처럼 무겁고 소란스러웠다.
대검찰청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노 전 대통령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단체 등이 모여 소란스러웠다.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는 친노세력은 안타까움을 토해냈고, ‘가짜 좌파 노무현’을 외치던 반노세력은 격분을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쏠린 비난이나 지지에도 흔들림없는 모습이었다. 잇따라 터지는 프레시에 잠시 굳은 미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거듭 “온갖 억측에 대해 정리가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배경이라도 있는 듯, “다음에 (끝나고) 하자”는 짧은 답변으로 소감을 밝힌 직후 청사 안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에서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그러나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성실하게 일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고 자신감 넘치던 패기에 찬 대통령은 사라졌다. 최고 국정운영자였던 ‘아우라’는 여전했지만, 그 빛은 약해졌다.
남색 양복에 은색 넥타이, 흰 와이셔츠의 깔끔한 차림새와 달리 유난히 성성한 백발이 대조를 이뤘다. 얼굴의 주름은 깊어졌고, 표정에서는 긴장과 착잡함이 묻어났다. 미소의 끝 자락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청와대 경호처에서 마련한 의전버스에서 내린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기피하려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에 6차례에 걸쳐 글을 올려 ‘항변’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답했고, 답변 전에는 머뭇거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봉하마을을 떠나기 전 ‘면목없다’는 심경을 밝힌 이유에 대해 “면목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심경과 ‘100만 달러’의 구체적인 사용처 등에 묻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다음에 하시죠”라고만 답하고 변호인 등과 함께 청사 안으로 직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후 1시50분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인규 검사장)의 안내에 따라 11층 특별조사실로 들어가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전해철 전 민정수석과 함께 이인규 중수부장실로 이동, 이 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티타임을 가졌다.
대검찰청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대검찰청 별관에 임시로 마련된 브리핑룸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오후 1시41분까지 차를 마시고 8분 뒤 조사실로 들어갔다”며 “노 전 대통령에게는 미지근한 우전녹차가 제공됐다”고 전했다.
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국민들이 이 수사를 지켜보고 있고, 조사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잘 알았다”고 짧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실에는 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과 주임검사인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 조서를 작성할 검사 1명과 수사관 1명, 노 전 대통령 측 변호인 등 5명이 참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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