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징계 없다 ‘악수에 사족까지’
대표팀 공헌 고려해 기성용에 경고조치만
특별한 선수라 봐준다는 의미 깔려 있어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그 업적을 고려해 협회 차원에서 엄중 경고조치하고 징계위원회 회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인들끼리만 주고받는 '폐쇄형' 페이스북에서 최강희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조롱한 기성용(24·스완지시티)이 대표팀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피했다. 경고로만 그치게 되면서 기성용은 다음달 페루와 친선 A매치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10일 경기도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임원 회의를 갖고 페이스북에서 "해외파 건들면 다친다"는 표현으로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향해 조롱하고 나아가서 국내파와 해외파를 나누는 듯한 발언을 한 기성용에게 엄중 경고하고 징계위원회 회부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가 기성용을 징계하지 않은 이유가 다소 우습다.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혀왔다는 것도 있지만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그 업적을 고려하여'라는 문구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업적이 없었다면 징계위원회 회부를 했을 것이라는 뜻인가. 결국, 축구만 잘하면 '장땡'이라는 표현과 무엇이 다를까.
또 하나는 이운재, 이동국, 우성용 등이 포함됐던 징계다. 이들은 2007년 동남아 4개국에서 벌어졌던 아시안컵 당시 음주 파문으로 1년동안 자격이 정지되는 징계를 받았다. 이들의 죄목(?)은 대표팀 무단이탈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이유로 경고만 하기로 했다고 한 적이 없다. 명백히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대회 기간 중 음주 파문에 대표팀 무단이탈까지 했으니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다.
반면 기성용은 공헌과 업적을 이유로 용서가 됐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고,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내는 등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징계위원회 회부감이지만 용서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하다.
음주 파문과 지금의 행태를 비교했을 때 한국 축구계와 대표팀에 끼친 해악은 다를 것이 없다. 달리 생각하면 기성용이 더욱 '악질적'일 수 있다. 음주 파문을 일으켰던 선수들은 술집에 모여 "우리 한번 같이 잘해보자"고 결의하기 위해 모였다는 명분 같지 않은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기성용은 명백히 자신의 위에 있는 감독을 욕보였고 해외파 선민사상에 빠져 국내파를 은연중에 조롱했다. 아울러 파벌을 나누는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대표팀의 한 선수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감독을 욕보이는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자회견과 페이스북은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우겠지만 페이스북이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페이스북 같은 SNS가 사적인 공간이라고 항변한다면 그는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기성용에게 경고 조치만 내림으로써 나쁜 선례를 만들어버렸다. 징계한다면 기성용과 형평성 문제가 나올 것이고 다시 한 번 기성용처럼 경고 조치만 한다면 대표팀 위계질서는 그야말로 '개판 오분 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대한축구협회가 기성용에 대해 경고만 내릴 생각이었으면 아무런 이유도 달지 말았어야 한다. 공헌과 업적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를 사족으로 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어떤 선수가 징계감인 행동을 했을 때 "나도 한국 축구계에 업적과 공헌이 있다"고 항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그야말로 '악수'다. 게다가 사족을 붙임으로써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비밀이 될 수 없는 페이스북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보인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감독을 욕보여도 용서가 되는데 선수끼리는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으로 이제 대표팀의 위계질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무너진 위계질서는 누가 세울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태극마크'에 대한 소중함과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까지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근심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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