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세계조정, 개운치 않은 ‘예매율 100%’
비인기종목에 불모지 한국서 예매 목표 달성
단체 구매 많아 사표 우려 ‘대구육상 연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중석을 꽉 채우는 일이다. 시·도민은 물론 전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만석(滿席) 관중을 실현하는 것이다.”
대회 성공의 관건을 묻는 질문에 대한 2013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 이시종(66) 충북지사의 답이다.
오는 25일부터 8일간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서 개최되는 '2013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입장권 사전 판매율(예매율)이 100%를 돌파했다고 대회조직위원회가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2013충주세계조정조직위원회(조직위)에 따르면, 입장권 5만2821장이 팔려 조직위가 잡았던 예매 목표량 5만2000장을 넘어섰다. 조직위 관계자는 "5월까진 예매실적이 저조했는데 6월 말부터 예매 주문이 몰려 목표를 달성했다"며 "현장 판매량을 애초 8000장에서 1만6000장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국내)비인기종목 가운데 비인기종목인 조정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조정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6만 매에 가까운 티켓이 팔려나갔다는 소식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경기 관람 요금이 나이와 관람석 등급(일반권)에 따라 3000원에서 1만2000원, 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일권이 2만6000원~5만1000원으로 책정돼 여타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 관람요금에 비해 부담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예매율이다.
하지만 예매 티켓의 판매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다.
조직위에 따르면, 예매된 티켓은 개인이 산 경우보다 후원 기업이나 기관, 단체가 수백∼수천 장씩 일괄 구매하는 단체 예매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개인 예매는 전체 예매 티켓수의 8.6%(4500장)에 불과했고, 단체 예매는 91.4%(4만8321장)이나 됐다. 예매된 티켓 가운데 개인적 관심에 따라 팔린 티켓이 전체 예매티켓 10매 가운데 1매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 오버랩 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2년 전 대구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관중석이다. 당시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에 따르면, 2011년 7월 17일 대회 티켓 예매율은 74.1%로 총 3만여 장이 팔려나갔다. 대회 조직위는 당시 그와 같은 수치가 2007년 오사카대회(49%)와 2009년 베를린대회(70%)의 최종 티켓 판매량을 넘어선 수치라고 자랑을 해댔다.
언뜻 보기에 대구세계육상의 흥행 대박을 예상케 했지만, 대구 현지 언론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 대구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교, 공공기관, 대구 지역 기업체, 지역 공동체 등 단체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량으로 티켓을 구매해 여기저기 뿌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공짜로 티켓을 얻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기장에 나와 관람하지 않아 관중석이 텅 빈 채로 대회가 치러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대구 지역 방송사의 한 프로듀서는 자신의 블로그에 대구 지역의 학생들 가운데 대구세계육상 관람 티켓을 공짜로 얻은 학생들이 인터넷 중고 장터를 통해 티켓판매를 시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하기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가운데 대구세계육상은 개막했고, 뚜껑을 열고 보니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회 개막일인 8월 27일 오후 입장률은 99.5%를 기록해 사실상 만석을 기록했고, 대회 2일째인 28일 오후 경기 입장객은 95.4%, 하루 평균 입장률은 80.1%로 나타나 당초의 우려는 ‘기우’에 그치는 듯했다. 특히, 우사인 볼트가 출전한 남자 100미터 결승전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경기장 주변에는 암표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고무된 대회 조직위원회는 "29일 부터 열리는 평일 오전 경기는 입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대회 참여 열기가 예상외로 높아 주요 경기 결승전이 열리는 오후 경기 입장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회 조직위원회의 이 같은 낙관적 상황인식에도 29일 이후 일정의 경기에서 대구스타디움은 그야말로 ‘썰렁’ 그 자체였다. 대회 개막이 임박했을 때 티켓 예매율이 98%에까지 이르렀지만 관중석은 채워진 자리보다 빈자리가 많이 보일 정도였다.
실제로 대회 3일째인 8월 30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선수들이 텅 빈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펼쳤다. 개학을 맞은 대구 초·중학교 학생 수천 명이 대거 동원됐지만, 낮 12시를 전후해 모두 빠져나가자 일부 외국인만 듬성듬성 자리를 지켰다. 특히, 대구스타디움 앞에는 1만원짜리 티켓을 공짜로 받은 사람들이 암표상에게 5000원에 티켓을 팔아넘기고, 이 티켓을 암표상들이 2만원에 되파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짜 티켓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경기 관람을 포기하거나 티켓을 헐값에 암표상에 넘긴 결과, 매진에 가까운 티켓 판매율에도 대구세계육상 관중석은 썰렁할 수밖에 없었던 것.
충주세계조정선수권의 예매율 100% 발표가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이유는 2년 전 대구세계선수권 당시의 상황과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이다. 조정이라는 비인기종목의 세계대회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의 존재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개인보다는 단체에 대량으로 판매된 티켓수가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예매된 티켓 대부분이 ‘사표(死票)’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회 후원 기업과 각종 단체와 기관에 의해 대량으로 구매된 예매 티켓은 학교나 군부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조정이라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떠넘겨지다시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로로 생전 처음 조정경기관람 티켓을 손에 쥔 사람이 충주 외곽의 탄금호까지 이동,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 관람할 만한 열의를 보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2년 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보다도 사표 발생에 대한 위험이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관중석은 극소수의 개인 관람객과 대규모의 ‘동원’ 관람객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충주세계조정조직위는 이번 대회가 역대 최대 규모고, 충주시 내부적으로 대회 열기가 크게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대회 개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미디어나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사실상 바닥 수준이다. 대회조직위의 ‘예매율 100% 돌파’ 발표에 축하의 박수보다 의구심과 걱정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