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겸손’ 가가와 신지…자학 모드 벗어나라
툭 하면 고개 숙이는 모습, 자신감 부족 오해 우려
능력 걸맞은 당당함 필수, 단점보다 장점 드러내야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가가와 신지(24)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입단한 이후,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들춰내는 지나친 겸손은 ‘자학’일 뿐이다.
가가와는 최근 맨유의 일본 투어 기자회견에서도 “지난 시즌 소속팀이 우승했지만, 개인적으론 웃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내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다”고 자신에게 야박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2012-13시즌 6골 5도움을 기록한 가가와는 충분히 제 몫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거칠다는 영국 무대 첫해임을 고려하면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다만, 무릎 부상으로 2개월 공백이 뼈아팠을 뿐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부상은 ‘불운’이지, 가가와 탓이 아니다. 더구나 가가와는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치르기 위해 유럽과 극동을 오가며 피로가 누적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사실 가가와의 문제점은 심리적 요소에 있다. 도르트문트에선 확고한 주전이었던 반면, 맨유에선 농구의 식스맨(조력자) 역할이 짙다.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좌천됐으니 자존심 상할 법도 하다.
이 때문인지 가가와는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현실에 순응하는 ‘저자세’를 보였다. 능동적인 독일 시절과 달리, 영국에선 수동적으로 변모한 것. 특히 플레이 스타일에서 안전한 백패스, 횡 패스 비율이 높았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부딪쳐보니 ‘피지컬 레벨’이 다름을 실감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회피할 수만은 없다.
가가와는 재능이 있는 선수다. 빠르고 명석한 플레이를 펼친다. 울퉁불퉁 실전 근육 훈련만 체계적으로 보완하면 영국에서도 통한다는 걸 지난 시즌 입증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자격지심보단 당돌한 기백이 필요하다.
게다가 신임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에게 눈도장도 찍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모예스 감독은 최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예고했다. 그는 “아직 선수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에이스였던 반 페르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며 새 술은 새 부대 정신에 입각, 만년 후보에게도 기회가 있음을 내비쳤다.
‘젊은 피’ 모예스 감독은 전임 퍼거슨과 다르다. 살신성인 박지성을 경험한 퍼거슨은 가가와에게도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퍼거슨은 불합리한 일(명단제외 등)을 당하고도 팀을 위해 희생한 박지성을 가리켜 ‘진정한 프로페셔널, 최고의 팀 플레이어, 내가 동양 선수들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극찬한 바 있다.
반면, 모예스 감독은 동양 정서에 낯설다. 겸손한 선수보다 당돌하고 주도적인 선수들을 선호한다.
웨인 루니 사례가 대표적이다. 모예스와 루니는 언뜻 톰과 제리(상극)처럼 보이지만, 이는 모예스의 지도 방식일 뿐이다. 모예스는 최근 방황하는 루니에게 ‘채찍질 수 십 번, 당근 한 개’ 전략으로 다독이고 있다.
맨유의 아시아 투어 기자회견에서도 모예스 감독은 “루니가 비공식 루트로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난 놓아줄 생각이 없다. 언론을 통해 수십 번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한다. 난 루니 같은 공격수를 좋아한다”며 “그는 영원한 맨유 일원이다. 그를 내 옆에 붙잡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가가와도 ‘드렁큰 장비’ 루니처럼 무철포(無鐵砲) 터프가이로 변모해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모예스 감독 앞에서 겸손한 저자세는 오히려 ‘투명인간’ 취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지나친 자신감은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당히 포장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가가와 성향에 대해 잘 모른다는 모예스 감독, 오히려 가가와에겐 기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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