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여야 대표 회담 끝내 무산되나
민주당 공개서한 들고 청와대 항의 방문 회담 분위기 조성 '물건너'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 측이 양자회담을 제안한 지 3주, 청와대 측이 5자회담을 역제안한 지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청와대와 야당 간 소통은 사실상 단절된 상황이다.
청와대 측은 22일 현재까지 민주당의 회담 제안과 관련해 어떤 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정원 사태에 대해선 박 대통령이 지난달 8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혔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게 청와대 측의 입장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의혹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여야가 국정조사를 시작한 만큼 관련 의혹들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 이후는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국민들을 위한 민생에 앞장서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당초 공방의 핵심은 회담의 형식이었다.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이 단독으로 만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논란과 관련해 담판을 짓길 원했다. 반면 청와대는 회담 규모를 여야 원내대표까지 참여하는 5자회담으로 확대해 경제, 민생 등 보다 폭넓은 현안을 주제로 회담에 임하려 했다.
이때까진 단순히 이해관계의 차이였다. 양자회담, 또는 3자회담은 국정원 이슈를 회담 의제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측에 유리한 안이었고, 5자회담은 대화 의제를 민생, 경제 부분까지 확대하면서 의회에 청와대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이 장외투쟁, 청와대 항의방문까지 불사하며 강경대응에 나선 상황에 청와대가 회담에 나서봐야 실질적 대화가 아닌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민생, 경제를 위한 입법 논의 등 실효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민주당 측의 책임이 크다.
김 대표는 회담을 제안할 당시부터 국정원 사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해임을 촉구해왔다. 최근 들어선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남 원장 해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들고 청와대를 항의 방문했다. 회담을 해봐야 자신들의 요구사항만 관철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강경한 입장을 보일수록 청와대의 입장에선 회담에 나설 의지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측이 회담의 논의사항과 결론을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마당에 청와대가 회담에 나서봐야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측은 앞선 박 대통령의 회담 제의를 수차례 거절했다.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이 청와대 측과 협의했다면 박 대통령이 이번 김 대표의 양자회담 제안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회담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선 섣부른 회담 수용이 자칫 청와대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청와대의 고집이 현 상황에 일조했다는 시각도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절충안으로 3자회담을 제시했음에도 끝내 5자회담을 고수한 것이 결과적으론 국회를 무시하는 것처럼 비춰졌다는 지적이다.
다만 청와대가 하반기 최대의 국정목표로 삼고 있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야당과 의회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민주당이 반보라도 물러선 입장을 보인다면 5자회담, 또는 황 대표가 제안한 3자회담 수준에서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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