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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12분 쿼터제 도입 추진 ‘질보다 양?’


입력 2013.09.24 13:26 수정 2013.09.25 15:01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2014-15 시즌부터 경기시간 40분→48분 추진

얇은 선수층-체력 부담-기술 저하 ‘부작용 우려’

한국프로농구연맹이 한 쿼터 12분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서울 SK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2014-15 시즌부터 경기 시간을 현행 40분에서 48분으로 늘린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그 여파에 관심이 쏠린다.

한 쿼터 12분제 도입에 농구계와 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대체로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농구의 얇은 선수층과 기형적인 리그 운영 시스템 때문이다.

현재 프로농구 정규리그는 6라운드 54경기로 치러진다. 플레이오프까지 더하면 최대 71경기까지도 가능하다. 단일 리그제만 놓고 봤을 때 세계적으로도 미국프로농구(NBA·정규리그 82경기) 다음으로 많은 경기수다. 문제는 NBA에 비해 KBL은 훨씬 선수층이 얇고 주전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리그라는 점이다.

한두 팀을 제외하면 KBL 구단들은 대부분 8~9명의 선수들 위주로 한 시즌을 소화한다. 비중이 큰 주축 선수나 외국인 선수는 매 경기 풀타임을 뛰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기에 야구-축구 시즌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약 5개월 사이에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까지 일정을 촉박하게 배치하다 보니 하루 휴식 이후 퐁당퐁당 일정이나 주말 연전으로 빠듯하게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시즌 후반에는 선수들의 체력적인 과부하로 인해 경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팬들의 흥미를 끌어야할 정규시즌 후반기 순위 다툼이나 플레이오프 빅매치가 오히려 맥이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 최근 프로농구에 불고 있는 극심한 '저득점' 현상도 이러한 과도한 일정의 부작용과 무관하지 않다. 비시즌에도 선수들의 기술 개발이나 각 팀의 고유한 전술적 색깔보다는 장기레이스를 버텨낼 수 있는 체력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결국 KBL 전체가 수비와 조직력 위주의 단조로운 농구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현장에서도 이런 문제로 인해 리그 일정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이미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만일 KBL이 추진한 경기 시간 확대가 단순히 볼거리 증대나 저득점 현상의 대안을 고려한 것이라면, 도리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위험이 크다. 세계적으로도 프로 리그를 운영하는 국가 중 쿼터당 12분제를 도입한 곳은 많지 않다. 중국 CBA가 NBA와 함께 드물게 12분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리그 경기수는 고작 32경기로 KBL의 3분의 2도 안 된다. 중국은 한국보다 농구인기가 훨씬 더 높고, 선수층과 외국인 선수의 폭도 더 넓다.

유럽의 경우, 쿼터당 10분제를 유지하면서도 리그 경기수는 대부분 30~34경기 내외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각 나라별 상위권 클럽들은 '농구판 챔피언스리그'라고 할 수 있는 유로리그-유로컵(대륙클럽대항전) 등에 참가한다.

하지만 정규리그와 유럽클럽대항전 경기수를 합쳐도 KBL의 정규리그(플레이오프 제외)보다 많은 경기수를 소화하는 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정작 유럽에서는 지금의 일정도 빡빡하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다. FIBA(국제농구연맹)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세계선수권·올림픽)도 모두 10분 4쿼터제로 경기를 진행한다.

물론 경기시간 확대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도 전혀 없지는 않다. 각 구단들의 체력적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자연히 선수 가용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고 식스맨 등 벤치 자원들의 출전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뚜렷한 보장이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팀마다 1승이 아쉬운 상황에서 중요한 순간에 주전들과 격차가 큰 벤치 멤버들을 과감히 기용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소수 주전과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혹사가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우려는 경기시간 확대가 과연 KBL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콘텐츠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느냐다. 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농구를 얼마나 '오래' 보느냐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NBA조차 전력 차가 큰 팀들 간의 대결에서 일찍 승부가 결정나면 소위 '가비지 타임'(버리는 시간)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크다. 경기력은 떨어지면서 시간만 늘어지는 농구경기를 팬들이 반길 리가 만무하다.

굳이 경기시간을 확대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후속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경기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경기수를 줄이는 것이다. 차라리 현행 6라운드 54경기 체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중국이나 유럽과 같은 30여 경기 정도로 줄이고, 컵대회나 플레이오프 일정을 확대하는 것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아울러 2군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각 구단들이 언제든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백업 선수층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를 다양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강행보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여론 절차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 당장 내년부터 경기 시간을 확대하는 것보다 2~3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시범 시행 같은 단계적인 코스를 밟아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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