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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파울' 헤인즈 징계 둘러싼 부끄러운 진실


입력 2013.12.21 09:07 수정 2013.12.23 09:5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헤인즈 솜방망이 징계도 잘못된 과거 선례 때문에

전가 앞서 폭력파울 둔감한 이유 찾아야

헤인즈의 솜방망이 징계가 가능했던 명분도 결국 과거 선례에서 비롯됐다. ⓒ 데일리안 DB

최근 프로농구판은 애런 헤인즈(서울SK)의 이른바 ‘살인파울’을 둘러싼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헤인즈는 지난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서 열린 ‘2013-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서울SK-전주KCC전에서 김민구에게 가한 비신사적이고도 위험한 파울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헤인즈는 수비를 위해 백코트하던 김민구의 명치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볼과 전혀 상관없는 위치에 있었고, 굳이 과격한 몸싸움을 펼칠 상황도 아니었다. 고의성이 짙게 묻어났다. 하지만 KBL은 선수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파울에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쳐 빈축을 샀다.

헤인즈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헤인즈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그가 외국인 선수이기 때문에 더 커진 면도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을 지나치게 떠받드는 풍토 때문에 오히려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농구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을 헤인즈 개인의 인성이나 외국인 선수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이 잘못됐다. 결국, 한국농구계가 왜 코트에서의 과격한 파울이나 폭력사태에 둔감한지 짚어보는 게 우선이다. 코트에서 고의적으로 상대를 가격하거나 위험한 파울을 저지른 것은 헤인즈만이 아니고, 외국인 선수들이 결코 처음도 아니다. 헤인즈의 솜방망이 징계가 가능했던 명분도 결국 과거 선례에서 비롯됐다.

2002-03시즌 당시 SK 빅스의 최명도는 대구 오리온스와의 홈경기 도중 김승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같은 해 전주 KCC 정재근도 서울 삼성 박성훈의 턱을 팔꿈치로 쳐서 물의를 일으켰다. 2009년에는 전자랜드 김성철이 LG 기승호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당하기도 했다. 이들이 받은 징계는 모두 2~3경기 내외의 출전정지와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헤인즈에 내린 징계도 이 기준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명도, 정재근, 김성철의 행위가 헤인즈보다 낫거나 혹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같이 헤인즈 만큼이나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파울이었다. 농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몸싸움과 신경전이 비일비재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도 어느 정도 과실이 있다 해도 폭력행위 자체가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도 솜방망이 징계로 팬심은 들끓었을지 몰라도, 정작 농구계에서는 누구도 이 문제를 크게 공론화 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체접촉이 심한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쉬쉬하며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당시 사건들과 헤인즈 파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국내 선수들 문제였으며, 농구 선배가 후배에게 가한 폭력행위였다는 점이다. 김승현은 최명도에게도 맞았던 피해자였음에도 오히려 유발의 책임 때문에 같이 징계를 당했다. 기승호는 팔꿈치로 얻어맞고도 당시 제대로 항의 한 번 하지 못했다. 선후배 문화로 얽혀진 농구계 풍토 속에 어쨌든 때린 쪽이 선배였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국농구 폭력불감증의 역사는 오래됐다. 프로 출범이전인 80~90년대는 국내 선수들 경기에서도 지금보다 코트내 과격한 파울과 폭력사태가 빈번했다. 빗나간 승리지상주의로 만들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최악의 사례는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벌어진 서장훈의 목부상이다. 프로출범 이전인 1994년 농구대잔치 8강전에서 당시 연세대 서장훈은 리바운드 경합 중 삼성전자 센터 박상관의 고의적인 팔꿈치 가격에 심각한 목부상을 입었다. 당시 일시적인 전신마비 증세까지 왔을 정도로 심각한 중상이었다.

지금의 김민구보다 더 위험한 부상이었음에도 당시 박상관은 아무런 제재도 없이 끝까지 코트를 누볐고, 서장훈이 빠진 연세대는 삼성전자에 역전패 당했다. 현재 SK 문경은 감독도 당시 삼성전자 소속이었다. 서장훈은 프로무대에서도 한 차례 더 목부상한 뒤 은퇴할 때까지 목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나섰다. 선수시절 서장훈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된 목 보호대는 사실 코트 위에서 당해야 했던 무수한 거친 플레이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만일 과거부터 농구계 차원에서 코트 폭력행위를 근절하고 비신사적인 파울에 일벌백계하자는 여론이 형성됐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심각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그들에게 헤인즈처럼 영구퇴출을 하자는 주장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나같이 헤인즈 못지않은 ‘파울'을 저지른 장본인이지만, 그때의 사건은 이미 한때의 해프닝이 됐다. 그들은 지금도 대부분 지도자로 변신해 순탄한 농구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헤인즈의 경우 외국인 선수고 피해자가 김민구라는 촉망받는 스타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더 과열된 면도 있다. 그러나 헤인즈에 대해 스포츠맨십을 저버렸다고 비난하던 농구인들 중에서 과거 서장훈이나 김승현, 기승호가 같은 국내 동료선수에게 위험한 파울을 당했을 때 코트내 폭력행위 근절에 대해 앞장서서 쓴 소리를 한 인물이 얼마나 될까.

한 번 잘못된 선례는 결국 시간이 흘러 이제 갓 프로에서 꽃을 피우려는 애꿎은 어린 선수가 피해를 입었다. 선배들의 업보가 어린 후배들이 감당해야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헤인즈 한 명만을 악의 축으로 만들기 전에 무엇이 이러한 코트내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지 한국농구계 스스로가 질문을 던질 때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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