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순응적태도를 동의로 간주하는 것은 성적 결정권 침해
성폭행 사건에 대해 '합의에 따른 성관계'인가 '강압에 의한 성폭행'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을 밝힌 판례가 나왔다.
5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김상준 부장판사)는 술을 마시고 한국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러시아인 A씨(38)와 터키인 B씨(28)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21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러시아에서 알고 지내던 한국인 여성 C씨를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을 하고 이 장면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이들은 2심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면서 사건 당시 동영상을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으나 "피해 여성이 가해자에게 추가 피해를 입을 것이 두려워 순응할 수도 있다"며 성폭행으로 간주했다.
재판부는 "사회적인 도의에 어긋난 성관계는 일단 상대방이 거부할 것이라는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옳다"면서 "적극적·명시적 동의를 얻기 전까지 보수적으로 행동하고, 순응적 태도를 동의로 임의 간주해 성관계를 맺는다면 이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생긴 범행은 아니라고 보고 형량을 다소 낮췄다.
법원 측은 "다소 판명이 어려운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 여성이 인식한 바를 기준으로 성폭행 성립을 판단해야 하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