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엘리엇의 합병 저지 총공세에 차분한 대응
삼성물산 "법적 대응과 함께 우호지분 확보에 총력"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분확보에 이어 소송제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총 공세에 나섰다. 삼성은 이미 예상했던 수순으로 절차에 따라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측은 9일 엘리엇의 가처분 소송 제기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면서 법원에서 관련 서류가 도착하면 법무팀을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이 날 엘리엇은 서울중앙지법에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수순으로 법적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법원에서 가처분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임시주총이 열리더라도 합병결의는 할 수 없게 돼고 엘리엇은 법원 판단을 근거로 합병비율 재산정 요구 등 적극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개 법원 판결까지는 1~2개월 정도 걸리지만 이번 사안은 임시주총 전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한국외환은행 우리사주조합이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을 상대로 낸 주식교환절차이행금지 및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신청도 주총 3일전에 판결이 이뤄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가처분 소송이 통상적인 범위의 수순으로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이사회 개최나 주총 소집공고 등의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한국외환은행 우리사주조합의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모두 기각한 선례도 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그룹 내 법무인력들을 총 동원해 이번 소송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난 4일 지분확보 공시 이후 우호세력 규합 시도와 이번 소송까지 일련의 과정은 매우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다는 방증”이라며 “향후 예상되는 법적 공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법적 대응과 함께 연기금을 중심으로 우호지분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의 지분구조상 임시주총에서 합병결의가 무산될 가능성은 적지만 만일의 가능성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임시주총 개최 전 권리주주 확정을 위해 일정기간 주주명부를 폐쇄하게 되는데 삼성물산은 권리주주를 11일 확정 짓고 12일부터 16일까지 주주명부 폐쇄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주총에서 의결권을 보유하려면 권리주주로 확정되기 2거래일 전인 9일까지 주식 매수 계약 체결을 진행해야 한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했다고 공시했기 때문에 '냉각기간' 제도에 따라 이후 5일간 매수한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추가 지분 확보는 불가능하다. 결국 외국인투자자를 중심으로 우호지분 확대에 적극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국인은 이 날 삼성물산 주식 50만6600주를 순매수해 지분율을 34.03%로 늘린 것은 엘리엇에겐 긍정적인 신호다.
또 외국인투자자 외에 국내 소액주주들도 이에 동참할 의사를 보이고 있어 엘리엇은 앞으로우호세력 확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데다 소액주주들의 결집력도 아직 미지수여서 단일 대오를 형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임시주총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어 상황이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삼성 측은 주시하고 있다. 이에 재무적투자자 성격인 강한 국민연금(9.79%)을 비롯, 최근 지분 매입에 적극 나선 연기금을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양사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 창출 등을 적극 설명하고 있는 만큼 임시주총까지 충분한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결권 확보를 위한 자사주 매각은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달 임시 주총에서 합병이 성사돼도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나 해외법원에 소송을 통해 합병 비율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삼성이 장기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엘리엇이 소액주주들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명분이 있는 상황에서 해외에서의 소송에서는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 만큼 삼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엘리엇이 이번 삼성물산 합병 반대로 얻은 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를 다음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의 지배구조 취약점을 노리고 삼성물산을 타깃으로 삼은 만큼 다음은 삼성전자 차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외국인 지분(9일 기준·51.76%)이 많은 삼성전자의 특성을 감안해 지분을 취득한 뒤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과 연계해 배당확대와 이사진 선임 등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을 워밍업으로 삼고 삼성전자가 주 타깃이 될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은 소송을 통해 합병의 문제점을 계속 제기할 것”이라며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는 삼성전자를 노려 우호 세력을 규합하면서도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지지 않는 게임을 즐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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