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의 작은 한국? '팍슨 뉴코아몰' 가보니...
<르포>한국 쇼핑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관·내부 인테리어
타겟 고객층 부유층서 대중으로..."지구에서 가장 싼 쇼핑몰"?
중국 상하이의 창닝 지구, 중국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 사이에 이질감을 주는 건물이 위치해있다. 한국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이 건물은 5만㎡ 규모의 '팍슨 뉴코아몰'. 중국 백성기업이 운영하던 팍슨 백화점 자리에 리뉴얼을 거쳐 새롭게 오픈한 팍슨 뉴코아몰은 중국에 패션으로 이미 20년 전부터 진출해있던 이랜드가 처음으로 선보인 유통점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오전, 톈산루 지하철 2호선 로우산관루역과 지하 1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이 건물에서는 들어서자마자 한국 최신 가요가 흘러나왔다. 화장품, 악세사리, 명품관이 입점한 1층에서 한 층만 올라가면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이 한국 브랜드다. '미쏘'와 '슈펜', '에뛰드 하우스', '이니스프리', '난닝구', '인 더 그레이', '티니위니' 같이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가게들이 줄 지어 있어 순간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할인을 알리는 입간판에 적힌 중국어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흔한 쇼핑몰, 혹은 프리미엄 아울렛을 보는 듯 하다. 10%라도 할인 입간판이 적힌 매장이 대다수인 것도 어쩌면 똑 닮았다. 이날 오픈을 앞두고 포인트가 들어있는 카드 선착순 100명 발급 이벤트에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오픈을 앞두고 매력적인 이벤트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략 선택까지 한국에서 많이 본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이랜드그룹이 고가 브랜드 전략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일궈낸 아울렛이다. 주요 고객층을 부유층에서 서민층으로 끌어내리겠다는 포부로 대대적인 할인행사까지 내걸었다. 이랜드 관계자는 '지구에서 가장 싼 쇼핑몰', '면세점보다 싼 쇼핑몰'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실제 매장을 돌아본 결과, 한국의 아울렛이나 면세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같은 제품인데도 한화 기준으로 2만원 이상 비싼 곳도 있었다. 이는 중국의 관세 규정으로 워낙 수입품에 붙는 세금이 높다보니 일어난 현상으로 보였다. 아무리 할인이 들어가도 원가 자체가 높다보니 그다지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는 못했다.
다만 '백토리(BACTORY)' 같은 저가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이랜드 백화점 영업부가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이 매장은 가격을 대폭 낮춰 저가 의류가 판매되고 있었고 주마다 특정 상품을 할인해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봄 맞이 행사 품목은 야구점퍼. 야구점퍼 앞 중국인 고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야구점퍼를 살펴보고 입어보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니스프리 매장은 지난 14일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음날인 15일 오전 역시 줄 서기 행렬이 이어졌다. 이니스프리 매장 말고도 많은 중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팍슨 뉴코아몰 전체에 포진해있었다.
그리 싼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객들이 우르르 몰려든 이 팍슨 뉴코아몰의 신비로움은 계산대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랜드 속옷 브랜드 '에블린' 계산대 앞에서 20대 중국인 고객이 핸드폰의 QR코드를 내밀었다. 멤버십 카드 개념인 줄 알았더니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사용률이 급격하게 높아진 '알리페이'다. 한국의 '삼성페이'와 비슷한 이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결제를 하는 고객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계산 차례가 와 현금을 내밀자 점원이 크게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돌아온 말은 "잔돈이 없으니 신용카드를 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잔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314위안의 제품을 구매하고 320위안을 냈으니 돌려받아야 할 돈은 고작 6위안. 이 6위안이 없다고 손을 내저으니 덩달아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쓰지 않으려고 했던 신용카드를 내고 나서야 결제가 완료됐다.
에블린 뿐만이 아니었다. 1층에 위치한 명품관 '럭셔리 갤러리'에서도 현금 결제를 하려고 했더니 잔돈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은 "팍슨 뉴코아몰을 기존 이랜드 고객층이 30~40대에 집중됐던 것을 20대 등 젊은 층으로 타겟을 옮기는 기회로 만들 것"이라며 "현금 사용을 최소화하고 카드, 모바일 결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현금 사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가 '잔돈을 준비하지 않겠다'라는 의미여야 했을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팍슨 뉴코아몰의 신비로운 매력은 끝이 아니었다. 출출해지려던 찰나, 지하 1층의 '정상한품'이라는 한국 분식집이 눈에 띄었다. 메뉴판부터 한국어로 쓰여져있었고 벽에는 '안녕하세요 정상한품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중국인 점원의 가슴팍에도 '위샹'이라고 한국어로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있었다.
메뉴판의 '매콤한 김치찌개'를 달라고 하고 자연스럽게 카드를 내밀었더니 이번에도 점원의 당황한 표정을 봐야만 했다. 점원 위샹 씨는 카드를 돌려주며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카드가 안 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다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현금을 내밀면서 도대체 이 곳은 어느 장단에 놀아야 하는 곳인지 궁금해졌다.
이처럼 중국의 결제 시스템이 익숙지 않은 한국인들이 섣불리 한국을 느끼기 위해 갔다가는 당황하기 십상이다. 2NE1과 박진영까지 넘나드는 노래부터 브랜드가 한국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는 쇼핑몰이지만 언어장벽과 결제시스템 차이가 '여기는 중국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팍슨 뉴코아몰은 층마다 그 컨셉에 맞는 인테리어로 중국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였고, 실제 청바지를 덧대 만든 소파에는 중국인들이 둘러 앉아 청바지를 만져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중국 백화점들 사이에서 차별화를 원하는 중국인들의 발길도 제대로 잡은 듯 했다.
이날 팍슨 뉴코아몰을 찾은 중국인 고객 쟝사오칭(28·여) 씨는 "매장을 둘러보니 상하이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질 좋은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며 "중국에서도 유명한 한국 인터넷 쇼핑몰 브랜드들도, 여기에서 직접 입어 보고 살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 루쉔옌(42·여) 씨는 "세련된 백화점 같기도 하고, 아울렛 같기도 한 두 가지 느낌이 한 건물에 있는데 상하이에 이런 느낌의 몰은 없었다"며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왔는데, 저희 동네 주변에도 이런 몰이 생기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팍슨 뉴코아몰과 같은 쇼핑몰은 중국 전역에 걸쳐 계속해서 생겨날 전망이다. 이랜드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중국 내 유통점 100호점을 계획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사실 처음이기 때문에 1호점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미비한게 많아 불만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시행착오가 분명히 있는 것 같고 2호점은 훨씬 더 잘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연말에 10호점만 해도 상당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랜드의 목표는 중국 최대 유통기업으로 발전해 2020년까지 매출 20조를 달성하는 것이다. 중국에 많은 유통 대기업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이랜드의 과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250개에 달하는 자사 브랜드, 이른바 컨텐츠로 무장했다는 자신감만으로는 이랜드가 중국 최대 유통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확신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랜드가 정말 차별화로 중국 유통 시장을 선점해 나갈지, 박 부회장의 선언만큼 올 연말의 10호점에서는 이랜드그룹만의 매력으로 중무장해 중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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