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사로 도발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야당 대변인?
'중립성' 의무 의장 "공수처 설치·사드 반대" 공격
정가 "야당대표 연설이면 훌륭했을것 의장은 부적절"
'중립성' 의무 의장, 개회사서 공수처 설치·사드 반대 주장
새누리, 사퇴 촉구하며 보이콧 강수…야당 "민생 외면" 비판
‘무소속’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언이 1일 열린 첫 20대 정기국회의 마비를 불러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개회사를 두고 “야당 대변인이냐”라며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힐난했다. 정 의장은 취임 당시 “300명 의원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책임국회를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을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사퇴 촉구와 20대 국회 일정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두고,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정 의장과 야당은 아쉬울 것 없다는 입장이다.
개회사로 인한 파행의 원인이 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관련과 사드 배치 관련이다. 정 의장은 “우 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청와대 민정수석은 실질적으로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저는 최근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특권, 공직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 이제 더 이상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기관의 신설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정기회의 기간 내에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기관 설치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서는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 그로 인한 주변국과의 관계변화 또한 깊이 고려한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재는 수단이다. 때론 유용하지만, 때론 위험한 수단”이라며 “중요한 것은 수단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장의 발언은 야당의 입장과 동일하다.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한 새누리당 입장과는 배치된다. 이에 새누리당은 정 의장 개회사 도중 반발했고, 집단 퇴장했다. 국민의당은 심각한 경제·민생 여건을 이유로 들며 야당 단독으로라도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자는 입장이지만, 더민주는 정기국회 첫 날부터 야당 단독 처리는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다만, 추경 통과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더욱 강조한 사안인 만큼, 새누리당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의장의 의무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사과와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또한 이날 밤 늦게까지 의원총회를 이어가는 강수를 두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정현 대표는 정 의장을 직접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정치적 의도 없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현안에 대한 입장을 사심 없이 얘기했다”며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은 지난 70년 간 이 땅의 의회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한 선배 정치인들의 모든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20대 국회의 정기국회 첫날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국회법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며 당리당략을 택했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기 전까지 20대 국회 모든 일정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또한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 오늘 밤이라도 추경안 처리, 대법관 인준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가에서도 정 의장이 의장의 의무인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정 의장의 개회사가 만약 야당 교섭단체 연설이었으면 훌륭했을 것”이라며 “그동안 국회의장이 개회사에서 만큼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지, 이번 일처럼 개회사가지고 시끌벅적한 적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야당이 다수가 되니 민감한 부분을 굳이 집어서 여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본보에 “우 수석 문제 같은 경우는 (국민적 비판 여론이 있으니) 그럴 수 있는데, 사드 문제는 좀 다르다고 본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하기에는 사드 문제는 여론이 극명하게 갈린다”고 했다. 또한 “국회법에서 왜 국회의장이 탈당해야 한다고 얘기하는가를 되새겨 봐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지금 중국과 사드 문제와 관련해 대치 상황인데, 국회의장이 그런 이야기를 해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굉장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다만 새누리당의 이날 행보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20대 국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샅바싸움’에만 몰두,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줄을 잇고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우리는) 최대한 추경 통과를 위해 인내심 갖고 기다리고 있다”며 “지난번(19대 국회) 정의화 (전) 의장 직권상정하고도 사과 안 했는데 (이번에) 말 몇마디 가지고 이렇게 전체 파행시키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정 의장이 당대 최고의 개회사를 했다”며 “야당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국회 연설을 문제 삼아 퇴장한 적이 없다”고 여당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렇듯 여야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대치 상황과 국회 공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