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FP, RC, PA, LC, FSR, MP 등 천차만별
하나 같이 '설계사' 지우고 '재무 전문가' 강조
보험사들이 영업 조직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마다 설계사에 다른 이름을 붙이면서 소비자들의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융 전문가처럼 보이기 위한 명칭을 쓰다 보니 일반인들로서는 보험 설계사인지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최근에는 취업준비생들 영업으로 끌어들이는 데까지 이를 적극 활용하고 나서면서 설계사 호칭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이 설계사 대신 가장 많이 쓰고 있는 표현은 파이낸셜컨설턴트(Financial Consultant)의 약자인 FC로 재무설계사로 번역된다. 삼성생명과 NH농협생명, 미래에셋생명, ING생명, 동양생명, 신한생명, ABL생명, 흥국생명, 흥국화재 등이 설계사를 FC로 표기하고 있다.
이처럼 FC로 설계사를 부르는 곳은 주로 생명보험사들이다. 갑작스런 사고와 그에 따른 상해를 보장하는 손해보험사와 달리 종신보험 등 고객의 일생과 함께한다는 상품 특성에 맞춰 지속적인 재무 관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FC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설계사 명칭은 파이낸셜 플래너(Financial Planner)의 줄임말인 FP로, 이 역시 의미는 재무설계사를 뜻하는 FC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이 설계사를 FP라고 부르고 있다.
리스크 컨설턴트(Risk Consultant)의 영문 첫 글자를 딴 RC는 손해보험 설계사들의 명함에서 종종 눈에 띄는 호칭이다. 위험설계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RC라는 이름은 생활 속에서 종종 겪을 수 있는 사고나 상해를 보장하는 손보사들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손보사인 삼성화재가 설계사들을 RC로 부르고 있다. MG손해보험도 RC 명칭을 사용하는 손보사다.
자신만의 설계사 명칭을 만든 보험사들도 눈에 띈다. 현대해상은 자사 설계사를 하이플래너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해상의 대표 브랜드인 하이카를 떠오르게 하는 의도로 보인다. DB손해보험은 프라임 에이전트(Prime Agent)의 약자인 PA를, KB손해보험은 라이프 컨설턴트(Life Consultant)를 줄인 LC를 설계사 명칭으로 쓰고 있다. 롯데손해보험도 설계사를 LC로 부르지만 이는 롯데 컨설턴트(Lotte Consultant)라는 의미로 KB손보와는 의미가 다르다.
외국계 보험사들로 넘어가면 설계사의 이름표는 더욱 다양해진다. 메트라이프생명의 설계사 명칭인 FSR은 파이낸셜 서비스 레프리젠터티브(Financial Services Representative)란 비교적 긴 이름의 약어이지만, 뜻은 결국 재무서비스대표 정도로 다른 보험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밖에 푸르덴셜생명은 라이프 플래너(Life Planner)의 머리글자인 LP를, AIA생명은 마스터 플래너(Master Planner)의 약자인 MP를 설계사 이름으로 사용 중이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런 명칭들을 앞세워 설계사임을 최대한 가리고 고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설계사인지 모른 채 명함만 보고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기대했던 소비자들로서는 결국 보험 가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보험 설계사는 "평소 보험에 관심이 없던 일반 고객들이 제각각인 설계사 명칭들을 구분하고 인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설계사들의 영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보험사들이 꼼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처럼 설계사임을 감춘 이름이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을 현장 영업인으로 끌어들이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자리로서의 보험 설계사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젊은 영업인 구하기에 애를 먹고 있는 현장 보험 판매 조직들이 금융 전문가 타이틀을 앞세워 구인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보험 설계사는 "영업은 힘들고 직업적 안정성도 떨어져 가는데다, 사회적으로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식으로 보험 설계사가 비춰지면서 청년 설계사 찾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보험 영업인 모집 시 굳이 설계사임을 내세우기 보다는 재무 전문가의 의미가 담긴 공식 명칭을 강조하며 접근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