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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감형했는데 또?…성범죄 연예인 항소 어떻게 봐야 하나


입력 2020.05.19 08:50 수정 2020.05.19 08:53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합의·반성'만으로 감형…여론 싸늘

정준영·최종훈 상고…강지환 '집유'

정준영 최종훈. ⓒ데일리안 DB 정준영 최종훈. ⓒ데일리안 DB

성범죄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으면서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 기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고법 형사12부(윤종구·최봉희·조찬영 부장판사)는 12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특수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정준영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준영이 자신의 행위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감형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았던 최종훈에게는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최종훈은 정준영과 달리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점을 감형 이유로 들었다. 둘은 모두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최종훈의 형량 감소폭이 정준영보다 큰 이유는 합의 여부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소심에서 정준영은 두 차례, 최종훈은 아홉 차례 반성문을 냈고 정준영은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합의를 하게 되면 형 절반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n번방 사건도 터지다 보니 국민의 시각에서는 맞지 않는 양형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전에 일어났던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한 점도 작용한 듯하다"고 짚었다.


법무법인 도담 박현정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며 "피해자가 합의를 했으면 재판부도 양형에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정준영의 감형 이유로 든 '진지한 반성'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출한 반성문을 토대로 '진지한 반성'에 대해 판단한다. 반성문뿐만 아니라 탄원서도 감형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지환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낸 탄원서 내용이 진실이기를 바라고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다짐이 진심이기를 기대한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과 강지환 모두 항소했고, 14일 열린 항소심에서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강지환ⓒ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강지환ⓒ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문제는 성범죄 연예인들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기 위해 합의나 반성을 공식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점도 모호하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젠더폭력근절대책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정준영의 감형에 대해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정준영이 진지한 반성이 있었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는데 적합한 양형이었는지 의문"이라며 "n번방 사건과 같이 양형과 처벌의 확실성을 높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성범죄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나왔다. 최근 n번방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들끓으면서 성범죄 양형 기준이 다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선고된 1·2심 성폭력 사건 137건의 판결물을 자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총 48건(35%)에 '피고인의 반성과 뉘우침'이 양형 요소로 등장했다. 하지만 '진지한 반성'은 법관들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월 "형식적 기준을 넘어 진지한 반성이 확실히 드러날 때만 감경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감형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합의에 대해서도 법원이 피해자가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피해자 중에서는 합의는 하기 싫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마지못해 합의하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강지환 피해자 측 변호인들은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언론보도를 통해 직업과 연령이 모두 공개돼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항소하고, 준강제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런 정상과 과정을 모두 고려해 판결을 선고해달라"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성범죄 항소심에서 반성과 합의만으로 감형을 해준다면 동종 범죄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성범죄자들이 반성하는 척하거나 '돈이 있으니 합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까봐 우려된다"며 "법원에서도 양형 기준을 정할 때 합의했다고 감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요소를 참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법원은 반성이나 합의 여부를 양형에 어떻게 고려할지 판단한다"며 "성범죄 양형에 있어선 과거보다 반성이나 합의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짚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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