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가 각각 정한석, 장항준, 모은영을 새로운 집행위원장을 맞이했다. 이에 각 영화제가 직면한 고유한 과제와 전략적 방향 전환이 주목된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는 2년이 넘는 공백 끝에 정한석 위원장을 선임하며 조직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2022년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의 사퇴와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해촉, 이용관 이사장의 조기 퇴진으로 이어지며, 영화제는 수뇌부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졌다. 이후 2023년과 2024년은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영화제를 치렀고, 조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돼왔다.
정한석 신임 위원장은 오랫동안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인물로, 내부를 잘 아는 동시에 콘텐츠 중심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추석 명절과 전국체전 등의 일정을 고려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에서 9일로 조정됐다. 앞당겨진 영화제 일정과 함께 조직 재정비 속에 OTT 플랫폼과의 공존 속에서 영화제가 아시아 영화 허브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된다. 여기에 박도신 부집행위원장과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의 이탈, 그리고 정 위원장 본인이 맡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자리까지 공석이 되면서, 핵심 인력 재정비 역시 시급한 과제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전,란'이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OTT 주요 프로그램 이벤트로 떠오르며 정체성이 흔들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한 정체성 정립 역시 올해 주목되는 지점이다.
29일 예정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정 위원장은 박광수 신임 이사장과 함께 경쟁 섹션 개편, 시상 체계 변화 등 영화제의 구조적 리뉴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대중성과 연출력을 두루 갖춘 장항준 감독을 새 위원장으로 선임하며 '대중화'라는 명확한 방향키를 쥐었다. 영화와 음악을 결합한 콘셉트를 지닌 이 영화제는 장 감독의 캐릭터성과 방송·예능에서의 입지를 적극 활용해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음악 중심의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 감독이 가진 스토리텔링 능력은 영화제 고유의 '음악영화'라는 장르적 정체성에 흥미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기대가 모인다.
대중성을 보완하면서도 음악영화라는 특화 장르의 매력을 넓히려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방향성은 지역 기반 문화행사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꾸준한 예산 지원과 함께, 장르영화에 특화된 제작·배급 지원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오랜 시간 서독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해 온 내부 인사인 모은영 신임 집행위원장이 올해 영화제를 이끌게 됐지만 정부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정부 지원 보이콧 선언을 했다.
서독제는 수익성이 아닌 실험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창작자 중심의 독립영화 생태계를 지탱해 온 대표적 플랫폼이다.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과 실험 정신을 상징해온 영화제가 국고 지원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비주류 예술영화 생태계를 흔드는 조치라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컸다.
이는 행정 편의주의적 예산 결정, 장기 비전 없는 공모 방식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어온 결과다. 형식적 경쟁력 중심의 평가 체계를 넘어서, 콘텐츠의 다양성과 문화 생태계 유지를 위한 실질적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단순히 독립영화계 내부의 행사를 넘어,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층이 산업 전반에 신선한 자극과 질문을 역할을 해 왔다. 정부가 서독제의 예산을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세 영화제는 서로 다른 조건과 배경 속에서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화의 길에 들어섰다. 영화제는 새로운 목소리와 실험적 시도가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실험의 장이다. 이 기반이 무너지면, 한국 영화는 기획과 자본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척박한 생태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새 수장들을 맞이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영화제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다시 되묻고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