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싱가포르서 악수한 손 계속 잡을 필요 있나"
연락사무소 사실상 폐쇄…판문점 선언 한 축 무너져
남북미 정상간 합의, 무력화될 수 있다는 관측
대북전단을 구실로 한국 때리기에 나섰던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싱가포르 회담) 2주년을 맞아 미국에 으름장을 놨다.
남북 간 통신선 차단으로 판문점 선언 한 축이 무너진 상황에서 북한이 싱가포르 선언 파기 가능성까지 암시해 긴장감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12일 북한은 리선권 외무상 명의 담화에서 "우리 최고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유지된다고 하여 실지 조미(북미)관계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미국은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장기적 위협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더는 대가없이 치적 선전을 위한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겠다"고 했다. 자력갱생 노선을 거듭 강조해온 북한이 '무력 증강' '관계 단절' 가능성을 암시해 본격적 대선 국면을 앞둔 미국에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북한의 공세적 입장은 앞서 한국에 먼저 취해진 바 있다. 북한은 지난 9일 남북 간 통신선을 일거에 차단하며 사실상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잠정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개성에 위치한 연락사무소는 코로나19 여파로 남북 관계자들이 모두 철수한 상태에서 하루 두 차례 유선 연락을 취하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9일 북한의 통신선 단절로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마저 끊기게 됐다.
연락사무소 설치가 남북 정상 간 합의인 판문점 선언의 주요 내용이었던 만큼, 북한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판문점 선언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조치였다는 평가다. 판문점 선언의 주요 합의 사항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예고했던 대남 공세를 이어가며 판문점 선언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남북 간 연락선 단절을 한국 관련 조치의 '첫 단계'로 언급하며 △개성공단 폐쇄 △군사합의 파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北, 싱가포르 합의 파기 할 수도"
대남 공세 통해 미국 반응 우회적으로 살필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향후 북한이 남북 정상 간 합의는 물론 북미 정상 간 합의마저 형해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일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를 공식 파기하는 선언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승절(7월 27일), 정권수립일(9월 9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 중대 시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연구위원은 "올해 하반기에 핵무력 증강을 재개하겠다는 선언을 할 수 있다"며 "최근 북한이 포병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포병절(6월 20일) 메시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6.12 싱가포르 선언이 2년 만에 물에 새긴 선언이 되었다"며 "우리 정부는 안개 속에 있는 북미접촉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대미 담화 관련 내용을 '노동신문'에 싣지 않아 미국에 대해서 만큼은 대화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며 최종 담판 상대인 미국의 우회적 반응을 지켜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리선권 담화에서 보듯 김여정 담화, 통전부 대변인 담화, 이후 연락선 차단 등의 조치들이 표면적으로는 대북전단 문제이나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이 직접 소비하는 관영 매체로, 지난 4일 김여정 부부장의 대남 담화를 시작으로 대북전단 관련 한국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는 '각계 반응' 등을 연일 지면에 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