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 지연 8000억 돌파…금융 지원 방어선 붕괴
반년 이상 장기 연체 1000억 급증…건전성 위기 고조
국내 5대 지방은행이 내준 대출에서 제 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금액이 8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행된 금융 지원 정책에 힘입어 다른 은행들의 대출 연체는 예전보다 줄어든 모습이지만, 지방은행에서는 이 같은 방어선이 무너지는 모양새다. 특히 연체가 장기간 이어지는 악성 대출이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은행을 둘러싼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부산·BNK경남·DGB대구·광주·전북은행 등 5개 지방은행들이 보유한 대출에서 1개월 이상 상환이 미뤄지고 있는 금액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 8318억원으로 전년 말(7653억원)보다 8.7%(665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대구은행의 연체 대출이 같은 기간 2041억원에서 2335억원으로 14.4%(294억원) 늘며 최대를 기록했다. 부산은행 역시 1864억원에서 2220억원으로, 전북은행도 853억원에서 1007억원으로 각각 19.1%(356억원)과 18.1%(154억원)씩 해당 액수가 증가했다. 반면 경남은행은 2131억원에서 1996억원으로, 광주은행은 764억원에서 760억원으로 각각 6.3%(135억원)와 0.5%(4억원)씩 연체 대출이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로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면서 빚을 갚는데 힘겨워 하는 이들이 이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다른 은행들에서는 아직 이런 현상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방은행과 달리 은행들 전반의 대출 연체는 이전보다 축소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방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은행들의 연체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5조4373억원에서 4조8076억원으로 11.6%(6297억원) 줄었다.
이처럼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은행들 전반의 대출 연체가 적어진 배경에는 차주들의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금융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은행들에게 적극적인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주문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기업과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지방은행들도 같은 해 상반기부터 관련 조치를 적극 시행해 오고 있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대출 연체를 막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지방은행에서는 금융 지원의 효과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방은행의 대출의 질 악화를 둘러싸고 더욱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방은행의 대출 건전성 악화는 한층 두드러진다. 5대 지방은행에서 상환이 지연되고 있는 대출 중 6개월 이상 장기 연체되고 있는 금액은 조사 대상 기간 2821억원에서 3830억원으로 35.8%(1009억원)나 늘었다. 이들 지방은행의 전체 연체 대출보다 4배 이상 빠른 증가 속도다. 대출의 부실 정도가 훨씬 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부실의 정도가 훨씬 깊어지고 있는 지방은행의 대출 실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그 만큼 지역 경기가 침체됐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권역별 경기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들어 경기 여건이 나아진 것으로 조사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5대 지방은행의 영업 거점인 부산·경남, 대구·경북, 호남권 모두 전 분기 수준의 경기 여건을 유지하는 그쳤다. 같은 해 초부터 3분기까지 줄곧 경기가 악화된 이후 이어진 보합세란 측면을 감안하면 사실상 침체 국면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지방은행들의 경영난이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체 대출이 늘어날수록 금융사는 실제 부실을 대비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데, 관련 금액이 확대될수록 은행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5대 지방은행들이 지난해 들어 3분기까지 쌓은 충당금 전입액은 4681억원으로 벌써 전년 동기(3486억원) 대비 34.3%(1195억원)나 늘어난 상태다. 이로 인해 이들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9904억원에서 8377억원으로 15.4%(1527억원) 감소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 지원 정책은 대출 연체를 상당히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인데, 그럼에도 여신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건 매우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며 "이 와중 장기 연체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것은 끝내 회수 불능에 빠질 수 있는 대출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인 만큼, 좀 더 능동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