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만에 방송 재개, 또 사실과 다른 오류로 시끌
"내용도 구성도 꽝...자문한 내용 조금도 이용 안 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자문단 활용 방식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자문을 한 전문가들이 연이어 프로그램의 제작 방식에 비판을 가하면서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 이후 ‘흑사병과 중세 말기 유럽의 인구 문제’ ‘흑사병은 도시 피렌체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등의 논문을 쓴 박홍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SNS를 통해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도 구성도 꽝”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방송은 중세유럽의 ‘페스트’(흑사병)를 주제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항석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박 교수는 해당 방송이 중세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사료 해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인식만 키웠다며 “흑사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였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강연자 역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더 큰 문제는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식에 있었다. 박 교수는 이 프로그램에 직접 자문단으로 참여했다고 밝히면서 “힘들게 자문했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면서 “엉터리 역사를 전달하려면 프로그램을 당장 폐지해야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설민석이 강연자로 출연했을 당시에도 불거졌던 문제다. 2화 클레오파트라 편의 자문단으로 참여했던 고고학자 곽민수 씨도 당시 방송의 오류를 지적한 글에서 자문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tvN은 공식 입장을 통해 자문단을 더 늘리는 조치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자문단의 ‘인원수’가 아닌, 그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이를 방송에 어떻게 반영하는 가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그것을 토대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 차례 같은 논란이 있은 후 5주간 휴식기를 가지고 돌아오자마자 또 같은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자문단을 구성했음에도 그들이 말하는 전문적인 정보보다는 자극적인 내용만 부각시킨 채 예능적인 재미·흥미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도 가능한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송사의 부실한 제작 방식과 문제의식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지만 프로그램명에 ‘역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방송에서 자칭 전문가로 내세운 강연자가 전달하는 내용은 시청자들에겐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제작자들이 느껴야 할 책임감은 더 무거워야 하지만 ‘벌거벗은 세계사’ 측은 자문단을 두고도 그들의 자문은 무시하는 황당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박재용 연구실장은 이와 관련해 “역사적 사실 안에서 흥미요소를 찾아야지, 사실관계를 떠나 가십거리를 중심으로 구성하면서 거기에 역사 콘텐츠로 살을 붙이는 작업 방식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면서 “이런 제작과정 때문에 많은 역사 전문가들이 프로그램에 자문을 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낀다”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