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동학개미 심기 건드릴라 '신중모드'…"시장 움직임 예의주시"
시장서 셀트리온 급등락 연출에 "변동성 커지지 않게 냉정해져야"
공매도 논란의 파장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 조치를 5월 초까지 재연장하기로 했지만, 금융시장 안팎에선 "4.7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만 만족시켰을 뿐"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전히 기관·외국인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는 등 금융당국의 정책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15일 종료 예정이었던 공매도 금지 조치를 5월 2일까지 한 달 반 더 연장하기로 발표한 뒤 여론을 살피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 미국 비디오게임 기업 '게임스톱'에서 시작된 반(反)공매도 운동이 국내에서도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금융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자칫 개인투자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만큼 관련 언급을 하는 데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매도와 관련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 "증권시장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인 공매도를 완전히 금지하거나 무기한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예측‧인지하고 있다고 보고, 시장 안정화와 건전성 측면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저항은 조직화되는 조짐이다. 시장논리에 따른 대응이라기 보단 감정적 응징 성격이 강하다. 여기엔 그간 주식시장을 호령해온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에 겨냥한 '네들도 당해봐라'라는 보상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8년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배당과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개인투자자단체의 공매도 반대 투쟁도 한창이다. 개인투자자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3일 금융위의 공매도 금지기간 연장 발표 이후에도 공매도 반대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투연은 "공매도 폐지", "금융위원회 해체"라는 문구를 내건 홍보버스까지 운행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아직 대응할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금융당국 '정무적 판단' 아쉬워…개미 투쟁에 '뒷짐' 말아야
이에 금융권에선 금융당국 스스로 정책 신뢰를 잃고 시장상황에 대응할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애초에 공매도 재개 여부를 두고 정치권 입김에 휘둘리는 등 오락가락 행보로 불확실성을 키웠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뢰가 생명인 시장에서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들의 집단 저항에 대응할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를 하면 주문금액 범위 내 과징금, 1년 이상의 징역 등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사후 적발 강화' 조치를 내놨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작 개미투자자들이 요구 사항인 불법 공매도 사전 차단을 위한 공매도 시스템 전선화와 종합 모니터링 체계 구축은 기술적 한계 등을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금융당국이 여론을 다잡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책의 실패라기 보단 정무적 실패에 가깝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들의 요구를 '돈 잃은 개미들의 하소연'쯤으로 치부하고 보완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던 게 여론의 신뢰를 얻지 못한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 3일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 발표와 함께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 5개 기관이 "공매도가 주가 하락과는 연관 관계가 없고, 순기능도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지만, 성난 개미들을 설득하기엔 공허한 울림에 불과했다.
아울러 시장에선 공매도 금지 기간을 '한 달 반 연장'한 금융당국의 조치를 4.7보궐선거 일정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위는 당초 "3월부터 공매도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밝히고도 1000만 동학개미의 표심을 의식한 여권의 압력에 밀려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사이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각각 공매도 잔고 1위 종목인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의 주가가 요동을 치는 등 시장 혼선만 커지고 있다. 이는 개인투자자들이 이 종목 주주들과 뭉쳐 싸우겠다고 선언하면서 주식시장에 파고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시장 내에서도 "집단행동으로 변동성 커지지 않도록 냉정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이 납득할 수준의 공매도 관련 제도보완이 이뤄진다면 금융당국의 정책신뢰도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는 정치권과 여론이 함께 압박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한국판 게임스톱'으로 불리는 움직임에는 정무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