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D:이슈] 여자→할머니…윤여정이 하면 다르다


입력 2021.04.26 14:40 수정 2021.04.26 14:4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노희경 작가 "캐릭터 모던하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배우"

한국 최초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나는 전형적인 할머니 연기는 하기 싫다. 그건 내 필생의 목적이다"


윤여정은 지난해 10월 23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선정작 '미나리'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미나리'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정이삭 감독이 순자 캐릭터에 대해 윤여정의 해석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했고 책임감을 가지고 '미나리'에 임한 윤여정은 한국인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주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윤여정은 극 중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어린 손자 데이빗(앨런 김)과 앤(노엘 조)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인물이다. 순자가 등장하면서 냉랭하던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 분)의 가정은 환기를 담당했다. 또 시냇가에 미나리를 심고 키우며 영화 속 '미나리'가 상징하는 생명력을 상징했다.


'미나리' 속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임에도 전형적인 캐릭터에 갇혀 있지 않는다. 손주와 투닥거리기도 하고 쿠키를 만드는 대신 고스톱을 친다. 윤여정의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은 이미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를 뛰어넘는 감동을 가져다주는 건 윤여정이 정이삭 감독의 주제 의식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모성애의 뿌리와도 같은 할머니 캐릭터에 한국 문화의 특수성까지 탁월하게 녹여냈다. 그리고 미국영화 '미나리'를 통해 전세계에 울림을 선사했다.


윤여정은 다른 중년의 배우들과 달리 시크하고 모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자'란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 만의 길을 걸어왔다. '바람난 가족'(2003)에서 성불구자가 된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홍병한을 연기할 때도, '돈의 맛'(2012)에서 상류층 여성 백금옥이 돼 젊은 남자를 유혹할 때도, 여자란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파격적인 연기가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작품처럼 윤여정은 젊은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할머니 역할까지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다. '고령화 가족'(2013), '계춘할망'(2016)에서는 고단한 삶의 한 가운데 있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희생까지 토해내 전세대를 끌어안는다.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종로 탑골공원을 배회하며 성매매를 하며 살아가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의 소영도 윤여정이라면 모두가 설득돼 빠져든다. 보편적이지 않은 캐릭터마저 타당성을 부여하는 윤여정의 빼어난 무기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에서는 치매 설정으로 별다른 대사 없이 의자에만 멍하니 앉아있어도 주연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도 윤여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디어 마이 프렌즈'(2019) 등을 함께 작업한 노희경 작가는 2013년 방송한 SBS '힐링캠프'에서 "내가 아는 윤여정은 타고난 배우는 아니지만 너무나 존경하고 대단한 연기자라 생각한다. 그처럼 캐릭터를 모던하고 세련되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표현하는 배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노희경의 말처럼 자신의 해석이 뚜렷하기에 1966년 데뷔해 가장 독창적인 여성의 얼굴로 2021년까지 종횡무진할 수 있었다.


오늘(26일) 74세의 노년의 배우는 자신이 쌓아온 내공을 통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며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했다. 한국 영화계에 오래도록 남을 값진 역사적 순간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