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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백하다” 자서전 들고 직접 나서는 그들의 代母


입력 2021.05.03 09:00 수정 2021.05.03 07:56        데스크 (desk@dailian.co.kr)

정권 차원의 전과 지워주기 시도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지만…

그때는 탈당하라 요구했으면서

ⓒ데일리안 DB

“‘친노, 친문 진영의 대모’로 불리며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전 대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이다. 그들 가운데 한 전 총리만이 전과자가 되었다. 문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물론이고 정권 안팎에서 내로라하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한 전 총리에 대한 부채 의식을 공유하고 있을 법하다. 그 때문이었던지 정권 유력자들의 ‘한명숙 구하기’는 집요했다.


정권 차원의 전과 지워주기 시도


한 전 총리는 지난 2017년 8월 23일 2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쳤다. 만기출소 하면서 그는 “짧지 않았던 2년 동안 정말 가혹했던 고통이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됐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힘 깨나 쓰게 된 정권의 유력자들이 ‘대모’를 전과자의 처지에 방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한다 해도 특정인의 전과 세탁에 대한 정권 측의 집착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재판 과정에서도 지속해서 한 전 총리의 결백을 주장했다. 대법원의 형 확정판결에 따라 구치소로 들어가는 장면은 기상천외라 할만했다. 지지자들은 ‘진실 배웅’ 행사라는 걸 가졌다.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도 참여했다. 한 전 총리는 ‘사법 정의 장례식’이라며 검은 상복을 입었다. 손에는 지지자들이 쥐여준 성경과 백합이 들려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출소하는 날 첫 새벽에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전·현직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마중을 나갔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당장에라도 사면·복권을 하고 싶었겠지만,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복역 중인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사면이란 은전은 죄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할 때만 베풀어질 수 있다. 한 전 총리로서는 ‘결백 주장’을 포기·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운동권 대모의 체통을 지키고, 운동권 전체의 명예를 세우려면 ‘결백’을 공인받아야 한다. 수사가 잘못되고 재판이 잘못됐다는 검찰과 법원의 고백 혹은 인증(認證)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당과 검찰 일각에선 작년부터 ‘한만호 비망록’이라는 것을 들고나와 ‘한명숙 뇌물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했다(뇌물공여자 한 씨는 2018년 사망). 진실을 밝혀줄 엄청난 증거인 양 내세운 것이다. 그들로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그건 이미 재판과정에서 제시됐던 문건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한 씨의 위증 증거가 되기도 했다. 그걸로는 재수사, 재심 어느 것도 가능치가 않았다.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지만…


그런데 꼬투리 하나가 남았다. 1심 재판 당시 검찰 수사팀이 한 씨의 동료 재소자들이 한 전 총리를 모해하는 위증을 하도록 ‘증언 연습’을 시켰다는 진정 및 주장들이다. 그 가운데 김 모 씨의 위증 혐의 공소시효(지난 3월 22일)가 남아 있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3월 17일 조남관 검찰총장 권한대행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 부장 회의를 열어 이 문제와 관련, 당시 수사팀에 대한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라는 것이었다.


조 대행은 즉시 박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하면서 대검부장회의에 고검장들까지 참여시켰다. 그 사흘 후 대검부장회의는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정권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전 총리 구하기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제 제도의 틀 안에서 재수사, 재심을 요구할 이유나 명분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정권 실세들이 난처한 처지에 놓인 셈이 됐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 기대감을 부풀렸을 한 전 총리의 실망감 또한 예사로웠을 리 없다.


(아마 그래서) 한 전 총리는 국민에게 호소하기로 한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한명숙의 진실” 제목의 책이 곧 발간된다고 한다. 출판사가 책 표지와 서문, 추천사 등을 공개했다. 한 전 총리는 서문에 “나는 결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라고 썼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추천사에서 “이 책에는 군부독재에 기생해 ‘그렇게 살아왔던’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탄압하고 누명을 씌웠는지 그 진실이 담겨있다”고 역성들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증명될 수는 없지만, 보편성을 가진 명제다. 문제는 (한 전 총리 사건 같은 경우) 누가 진실 편에 있는지를 가려내기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자신의 양심만이 알 일이다. 그 양심을 누가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일방적 주장만 끝없이 계속될 뿐이다. “나는 결백하다!”


그때는 탈당하라 요구했으면서


2015년 12월 10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한 전 총리에게 ‘당적 정리’를 요청했다. 당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측근을 시켜 전하게 했다. “결백을 믿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치적 결단을 해 주는 것이 좋겠다.” 국민이 그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 전 총리는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국민들의 인식이 지금은 바뀌었을까? 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이니까?


차제에 정권의 높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해가며 운동권 대모의 결백을 입증해 내겠다는 결의를 과시했다. 국가 권력을 특정 개인의 전력 세탁에 동원할 수 있는 법적 도덕적 근거는 어디 있는가? 갑남을녀들도 억울함을 호소하면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줄 것인가?


총리까지 지낸 인사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자신을 기소한 측을 이처럼 끈질기게 ‘불의한 정권과 검찰’로 매도하는 게 당당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직불의(直不疑)가 낭관(郎官)으로서 문제(文帝: 중국 전한의 5대 황제)를 섬길 때였다. 같은 숙소를 쓰던 사람이 휴가를 가면서 다른 낭관의 황금을 가지고 갔다. 그 임자가 직불의를 의심했다. 그는 즉각 사과하고 황금을 사서 주었다. 휴가를 끝내고 온 낭관이 잘못 갖고 갔던 것을 돌려줬다. 그 후로 직불의는 ‘장자(長者)라는 칭송을 받았다(사마천, 만석·장숙 열전).


“기대할 사람에게 기대해야지, 이 들이 누군가?” 그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설령 한 전 총리가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권의 힘으로 개인의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온갖 무리를 거듭하는데 어느 국민이 좋게 보겠는가.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책까지 써서 결백을 주장한다?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유효해지는 국면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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