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래가 성희롱으로 고발당한 사건이 무혐의로 결론 났다. 그러자 박나래를 고발하거나 비난한 남성들이 과도한 잘못을 저질렀고, 박나래는 억울하게 고초를 겪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얼마 전엔 뉴욕타임스도 이 사건을 다뤘었다. 박나래의 방송내용이 서구 기준으로 봤을 때 논란이 될 만한 가능성이 없는 코미디에 불과한데 한국에선 기이하게 큰 논란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나래의 지지자들은 이 같은 격렬한 반응이 한국 문화의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성희롱이 발생하는 반면 여성이 공개적으로 성에 대해 발언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한 20대 여성은 뉴욕타임스에 "한국에선 남성이 성적인 것을 드러내는 게 쿨한 일이지만 여성은 이를 숨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한 연구자는 “박나래의 개그가 한국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여성도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충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했기 때문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남성들이 박나래의 별것 아닌 코미디를 성희롱으로 걸었는데, 이는 여성의 성적인 표현을 단죄한 것이란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문제가 있다. 일단 성희롱으로 고소한 건 과도한 공격 맞다. 고소가 아닌 공론장의 담론으로 해결할 일이었다. 그건 그런데, 사람들이 박나래 영상을 보고 문제 삼은 핵심은 성희롱 여부가 아니라 공평성이었다.
박나래는 유튜브 방송에서 남성 인형에게 '암스트롱맨'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인형 팔을 사타구니 쪽으로 밀어 넣는 등 성적인 행동을 했다. 만약 유명 남성 연예인이 여성 인형에게 성적인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엄청난 질타를 받고 지상파 출연 여부가 불투명해졌을 것이다.
남성이 하면 큰일 날 일인데 여성은 면죄부를 받는 현실이 논란의 원인이다.
러블리즈 멤버 미주는 웹예능에서 남대생에게 "너 여자 친구 있었어? 어디까지 갔어 여자친구랑?"이라고 물은 뒤 "끝까지 갔겠지"라고 단정했다. 사귄 지 200일 됐다고 하자 "무조건이네"라고 하더니, 남대생이 아니라고 하자 "웃기지 마, 너 남자 맞아?"라며 남대생의 아래쪽을 쳐다봤다. 만약 남성 아이돌이 카메라 앞에서 여대생에게 똑같이 행동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민아는 웹예능에서 남중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민아는 "엄청 에너지가 많을 시기인데, 그 에너지는 어디에 푸냐"고 물었고, 학생이 말없이 웃자, "왜 웃냐?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냐"고 했다. 학생이 "집에 있으면 엄마가 잘 안 계셔서 좋다"고 하자 김민아는 "그럼 집에 혼자 있을 때 뭐 하냐"고 하며 음흉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남성 방송인이 여중생에게 이런 뉘앙스의 질문들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거에 한 여성 방송인은 토크쇼에서 옆자리에 앉은 연하의 남자가수들에게"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 실력이 궁금하다"라고 했었다. 만약 남성방송인이 어린 여가수들에게 ‘침대, 키스’ 운운했으면 즉시 퇴출당했을 것이다.
당시 비판이 일자 그 여성 방송인은 ‘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는데 우리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여성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아니라, 남성이건 누구건 문제가 될 일이었는데 기이하게 핵심을 오도하는 해명이었다.
지금 박나래 관련 뉴욕타임스 기사에도 같은 시각이 나온다. 여성이 성을 표현해서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방송에서 인형에게 성적인 행위를 한 것 그 자체가 문제다. 남성이 그랬으면 당연히 질타를 받았을 것이고 지상파 출연에도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박나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방송에서 여성인형에게 성적인 행위를 해도 과연 옹호할까?
방송에서 남성의 성적인 표현은 엄격히 규제되는 데에 반해 여성의 성적인 표현은 걸크러시, 여성의 당당한 자기표현 등으로 미화된다. 바로 이런 불공평에 대한 문제제기가 핵심이다.
문제의 핵심을 논의해야 생산적인 결론이 나온다. ‘여성이 성적 표현을 해서 고초를 겪는다’는 식의 대응은, 그것이 사실도 아닐뿐더러, 반대편을 자극해 감정적인 대립만 극심해질 뿐이다. 과거 ‘침대, 키스’ 운운하고 비판 받은 여성방송인이 ‘여성의 욕망에 대한 차별’론을 펼쳤을 때 소모적인 논란과 대립만 심화됐을 뿐이다. 지금 박나래 논란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남성이 하면 질타 받을 일을 왜 여성은 괜찮은가’가 문제제기의 핵심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