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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들이 '합동취재' 하겠다며 겁박하는 나라 [정도원의 정치공학]


입력 2021.08.30 07:00 수정 2021.08.30 05:22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일부 유튜버 "이낙연이 밥줄 끊으려

해…합동취재단으로 대응하겠다"

'가짜뉴스' 없앤다며 유튜버 쏙 빠져

'취재'가 상대방 겁박 수단으로 전락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캠프에서 대선후보 경선 상대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우호적이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을 해온 일부 유튜버들의 방송 내용을 모니터링해 정리한 문건이 유출돼 소란이 일고 있다. 이들 유튜버들은 "이낙연 후보가 밥줄을 끊으려 한다"며 "일곱 개 유튜브가 합동취재단을 구성해 이낙연 씨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심층취재로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의 '밥줄'이 걸렸다는 사사로운 싸움에 대응 수단으로 '합동취재' '심층취재' 등이 오르내린다. 언제부터 '취재'라는 게 드잡이를 하고 있는 상대방을 겁박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취재는 잘한 것은 잘했다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도·논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유튜버들은 이낙연 전 대표의 사과를 촉구하며 그 압박 수단으로 '취재'를 꺼내든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다섯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 차례의 광역단체장 선거, 민주당 전당대회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충분히 검증이 된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저 자신들의 방송 내용을 모니터링한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이낙연 전 대표에게 달려들어 있는지 없는지도 불분명한 의혹을 합동취재하겠다는 이들 유튜버들의 행태는 그들 스스로 말했듯 '밥줄'이 걸려있다보니 보복적 방송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예고하는 행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듯 유튜버들이 '합동취재' '심층취재'라는 단어를 누군가를 무릎 꿇리겠다는 공갈의 수단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된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책임하게 쏟아지는 이른바 '가짜뉴스'의 대부분이 1인 미디어, 유튜버를 출처로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1인 미디어, 유튜버는 쏙 빠져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 유튜버의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은 정보통신망법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인데,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새벽 4시에 하이파이브까지 해가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이른바 '언론징벌법'과는 대조적이다.


이렇다보니 집권 세력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 방송인 김어준 씨의 '다스뵈이다'를 비롯한 유튜브·팟캐스트의 '가짜뉴스'를 팩트체크해 걸러내는 역할을 해왔던 레거시 미디어는 언론징벌법으로 꽁꽁 묶어놓고, 친여 유튜브·팟캐스트는 대선 판에서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게끔 멍석을 깔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복잡한 정치적 계산법이 작동하는 와중에 일부 유튜버들로부터 멱살을 잡힌 이낙연 전 대표를 불쌍하다고 동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낙연 전 대표도 "나도 21년 기자로 산 사람"이라면서도 "내가 현직 기자라면 (언론징벌법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전 대표는 언론징벌법의 법안 내용조차 잘 모르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가짜뉴스'의 온상인 유튜브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전 대표는 "거기에 유튜브가 제외되는 것으로 돼있느냐"며 "그런 것들이 모두 포괄돼야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조금 더 파악을 해봐야 되겠다"고 답했다.


'당신이 우리 밥줄을 끊어놓으려 하는 것 아니냐'며 합동취재단을 구성해 의혹을 심층취재하겠다는 겁박은 이낙연 전 대표가 21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 해본 적도 없고, 자신이 당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극성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표심 득실과 유불리는 그만 계산하고,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한 제대로 된 입법 방안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1993년 MBC에 입사한 기자 출신 후배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언론계 선배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우리는 기자였다"며 언론징벌법에 반대할 것을 호소했다. 이 전 대표가 내면에서의 양심의 소리에 응답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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