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 금융자산 9조5천억 처분
투자수익률 회복 동력 약화 우려
국내 생명보험사의 투자 실적이 지난해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이 임박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비하기 위해 최근 3년 간 10조원에 달하는 금융자산을 처분하면서 투자 수익 기반이 약해진 모습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금리 인상 효과마저도 미미한 수준에 그치면서 자산운용을 둘러싼 생명보험업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3개 생보사가 투자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총 37조4277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줄었다. 액수로 따지면 2388억원 감소했다.
주요 대형 생보사들의 상황을 봐도 흐름은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우선 한화생명의 투자영업수익은 5조6345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8% 줄었다. 교보생명 역시 5조3680억원으로, NH농협생명도 2조7767억원으로 각각 7.6%와 9.8%씩 해당 금액이 감소했다. 생보업계 최대 사업자인 삼성생명 정도만 투자영업수익이 10조415억원으로 4.7% 증가했다.
생보사의 투자 성적이 이처럼 부진에 빠진 이유는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자산 매각의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금융자산을 대거 처분하면서 눈앞의 투자 실적은 방어하고 있지만, 잠재적인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생보사들이 금융자산을 팔아 거둔 이익은 9조5231억원에 달했다. 2019년 2조5197억원에서 2020년 3조9808억원으로 급증했다가 지난해 3조227억원으로 다소 축소됐지만, 여전히 연간 3조원 대에 이르는 금융자산 처분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생보사별로 보면 이 기간 한화생명의 금융자산 처분 이익이 2조463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교보생명과 삼성생명의 관련 금액도 각각 1조9997억원, 1조3390억원이나 됐다. 이밖에 동양생명(7180억원)·농협생명(5173억원)·신한라이프(4332억원)·푸르덴셜생명(3336억원)·DB생명(2820억원)·미래에셋생명(2592억원)·AIA생명(2156억원) 등이 금융자산 처분 이익 규모 상위 10개 생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생보사가 궁여지책으로 자산 매각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내년으로 시행이 다가온 IFRS17가 자리하고 있다. IFRS17이 적용되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 방식은 현행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된다. 이에 가입 당시 금리를 반영해 부채를 계산해야 하고 그만큼 보험금 부담이 늘어난다. 최근 생보업계가 수익성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그래도 생보업계가 자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위기 대응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불러온 일시적인 제로금리 위기만 어떻게든 잘 넘기면, 금리 반등과 함께 투자 수익률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반등이 본격화하면서 이런 긍정적 전망에는 더욱 힘이 실려 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분위기다. 지난해 생보사의 운용자산이익률은 3.13%로 전년 대비 0.04%p 오르는데 그치며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한은 기준금리가 지난해에만 0.50%p 인상됐음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 생보사의 투자 수익률을 전반적으로 끌어 올리는 요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최근 몇 년간 이뤄진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자산 매각이 그 기반 동력을 약화시켜 온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