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가 연일 상승…자영업자 식재료값 직격탄
하반기 전망도 ‘먹구름’…전쟁·가뭄 등 여파 지속
소비자 느끼는 부담도 ‘상당’…“월급 빼고 다 올라”
“500원이라도 올리고 싶네요.”
서울 강서구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A씨(30대)는 최근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다 못해 한계에 부딪혔다. 짜장면, 짬뽕 등 면류를 6000원에 팔고 있지만 팔아도 손에 남는 건 없을 정도로 식재료 값이 올라 메뉴 가격을 상향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식재료 값만 30% 넘게 올랐다”며 “이렇게 말하면 어느정돈지 손님들은 체감하지 못 할텐데 양파 1망에 6900원 하던게 지금은 2만2000원도 저렴하다고 산다. 식용유도 4만원에서 6만원으로 올랐는데 밀가루는 말도 못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물가가 연일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고유가 등의 여파로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사회적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8일 저녁 찾은 외식업장 현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삭막했다. 정부가 지난 4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면서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기대감이 고조되는 듯 했지만, 분위기는 빠르게 반전됐다. 퍽퍽한 살림에 소비주체들은 지갑을 아예 닫아버렸다.
A씨뿐 아니라 이날 만난 강서구 인근의 다른 식당 역시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50대 B씨는 “싸게 팔면 이윤이 안 남고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안온다"며 “하다 못 해 무료로 주던 김가루와 음료수가 부담이 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밥도 한줄로 돌돌 말아놓으니 사먹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편하고 만만하게 보이겠지만 그안에 들어가는 채소가 몇 가지나 되는줄 아냐”며 “그동안은 아낌없이 듬뿍듬뿍 넣어줬으나 지금은 안 파는게 이득일 정도로 재료 값이 어마무시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KAMIS)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도매가 기준 국산 배추 10㎏의 평균 가격은 1만520원으로 1년 전보다 52% 올랐다. 국산 무 20㎏의 평균 도매가는 1만4677원으로 1년 전 대비 65% 뛰었다.
이밖에 양배추(31%), 양파(78%), 당근(23%), 대파(15%), 깻잎(14%), 깐마늘(18%), 느타리버섯(52%), 감자(57%) 등 국산 식재료의 1년 전 대비 도매 평균 가격 상승률도 모두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급기야 국제 곡물가 급등에 따른 사료 가격 상승으로 고기 가격도 전부 상승했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가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물가안정 대책 등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올해도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효과와 올 초부터 지속돼 온 가뭄에 따른 농작물 피해, 이웃나라 전쟁 등의 요인으로 앞으로 수개월간 높은 물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날 만난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고 하소연 하면서도, 가게를 찾는 손님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층이라 더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C씨는 “메뉴 가격을 올리는 순간 자살골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인건비라도 아끼기 위해서 직장인 아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일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집 뿐 아니라 앞집 옆집 뒷집도 마찬가지 얘기일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기 등 일부 식재료를 수입산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입산마저 가격이 전부 오른 상태”라며 “수출 제한, 환율 상승, 물류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식료품 가격도 일제히 상승해 도피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상승 부담도 상당했다. 식비같은 경우에는 선택이 아닌 필수 지출품목인 데다, 사실상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체감도가 훨씬 높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하소연이 꼬리표처럼 뒤따르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D씨는 “얼마 전에 자주가던 칼국수 집에 방문했는데, 김치 리필을 요청하니 배추 값이 너무 많이 올라 더 주기가 어렵다고 거절을 했다”며 “이제는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용돈 1만원을 쥐어줘도 떡볶이 조차 배달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식료품비나 외식비로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식비 등이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뛰어오른 만큼 하반기에는 저소득가구의 식비 지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날인 9일 만난 서울시내 직장인들도 가파르게 치솟는 ‘점심 값’에 부담을 호소했다. 최근 수년새 오피스타운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음식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1만원이 넘는 콩국수, 1만원대 중반의 냉면, 2만원에 육박하는 삼계탕 등이 속출하고 있다.
광화문·강남·여의도 등 서울시내 주요 오피스 권역 직장인의 체감 외식 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서민음식’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할 정도로 부담이 크다.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식당들은 멀리 있고, 대기 줄도 길어 한정된 점심시간 안에 이용하기도 어렵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E씨(30대)는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선 점심과 물가 상승을 합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며 “될 수 있으면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고, 고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밥상물가대위기④] 하반기 역시 최악...“기댈 곳 정부 지원 밖에?”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