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서열로는 내가 위”란 말은 청년답지 않은 권위 의식
우크라 방문 도중-이후, 외교는 없고 정진석과 언쟁만
정진석의 ‘선배’ 타령이 이준석에 다연발 탄약 제공
정권교체 위해 젊은 대표 지지한 보수우파 피로감 커져
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와 ‘자기 정치’를 본격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왜 갔는가?”
가야만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고, 가서 국민의힘과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은 발언을 그는 방문 도중, 그리고 귀국 이후에 계속 하고 있다. 그 발언은 우크라이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란 점이 그의 ‘외유’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러시아라는 강대국(비록 푸틴이 미친 놈 짓을 한다 하더라도 이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과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정하는 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외교라는 게 그래서 미묘하고(영어로 델리킷이라고 하는 이유다)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런데, 새 여당 대표가 지방선거가 압승으로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이 델리킷한 외교 행보에 나서겠다고 전쟁 지역으로 떠났다. 젊은 사람의 치기(稚氣)로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어떤 메시지도 갖지 않은 채…….
대통령 윤석열은 격려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특사 자격도 주지 않았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도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의 한 경제 선진국 집권당 대표가 공동의 가치인 ‘자유민주’를 위해 항전하는 나라를 방문한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이준석은 이것을 이용했고, 정진석도 이것을 달리 이용했다. 5선의 국회부의장인 그는 당 대표가 자신이 받는, 녹취록 등 일부 증거가 나와 있는 성접대 의혹으로 곧 당 윤리위가 열리는 이슈를 희석시키고자 기획한, ‘외유 도발’이라고 봐서 자기 정치를 우려한다는 말로 비판했다.
정진석의 이준석 때리기는 보수우파 중노년 층의 정서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언론에서는 당권 경쟁의 서막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런 포석 외에 이 ‘배설’ 욕구도 적지 않았다.
젊은 보수우파 지지자들(특히 이대남) 사이에 이준석 지지율이 상당한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그에 대한 반감이 압도적이다. 그가 이대남을 끌어들인 만큼 이대녀와 30~40대 여성 표는 더 많이 잃은 사실도 반드시 지적되어야만 한다.
이준석은 이대남의 지지를 지렛대 삼는 정도를 넘어 이를 확대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보수 유튜버들을 포함한 극소수 ‘틀딱’(틀니 딱딱거리는 늙은이)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澎湃)하다.
“대한민국에 정진석과 보수 유튜버들만 그렇게(이준석을 나쁘게) 얘기한다.”
그는 정진석의 공격에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했다. 우크라이나 방문 현장에서다. 방문 도중과 귀국 길, 방문 이후 내내 정진석 죽이기다. 우크라이나 얘기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어른, 고참, 기차, 개소리, 소이부답(笑而不答) 같은 말들로 싸우는 이전투구(泥戰鬪狗)가 신문을 도배했다.
“아무리 나이가 더 있으신 국회 부의장과 당 대표의 관계라도 서열상 당 대표가 위다.”
대한민국이 북한인가? 38세 정치인 입에서 나온 말이 아연실색(啞然失色)케 한다. 그러면 20대 평당원은 서열(序列)이 저 아래니 그에게 합리적인 비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가 서열이란 단어를 불러들인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이를 가지고 시비하는 것에 대항하려다 보니 그런 권위적인 말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봐주기에는 ‘서열’의 이미지가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
기자, 충청 출신인 정진석은 이번 이준석과의 설전에서 스타일만 구겼다. 그의 패착(敗着)은 어른, 선배, 고참 타령이다.
“어리고, 젊은 정치인의 말이니 당의 최고참으로서 웃어넘기겠다.”
이준석에게 다연발 화기 탄약을 무한대로 제공하는 하수 대응이다. 요즘 시대에 고참 따위 말을 쓰다니…….
대통령 윤석열은 이준석의 귀국 전 당 대표 비서실장과 통화(귀국 후 이준석 본인과 하지 않고 왜 비서실장과 했느냐도 중요하다)에서 “정 의원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고 했다. 이준석은 이를 무시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진석을 또 패대기쳤다.
이준석은 자신의 분탕질로 고전한 대통령 선거 후와 달리 지방선거 대승으로는 기세가 등등해진 모습이다. ‘누가 나에게 감히 맞설 수 있는가?’라고 호령하는 빛이 역력하다. “(남은 임기 1년 동안) 이제 자기 정치를 제대로 해보겠다. 당에 내 의견의 색채가 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공언할 정도다.
그러나 이준석을 지난해 보선-대선-지선 3연승의 승장(勝將)이라고 보는 사람은, 적어도 보수우파 중심 지지 세력 안에는 별로 없다. 오직 윤석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승리들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이런 ‘은인’ 대우를 어떻게 한 사람인가?
“저거 곧 정리된다.”
당 경선 경쟁자 원희룡에게 이렇게 말한 게 들통 났고, SNS에 “(윤석열이 당선되면) 지구를 떠나겠다”라고 적은 사실도 공개됐다. 그는 ‘경선 불복자’인 유승민을 지지했고, 다른 불복자 홍준표와도 윤석열보다 더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
며칠 전 유승민 출판기념회에 가서는 “노력하면 빛을 본다. 그 길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가 지선 직후 갑자기 발족시킨 ‘혁신위’가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 정지(整地) 작업 프로젝트라는 의심을 그래서 받는다.
그가 대통령 윤석열에게 보이는 언행은 대선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사, 악수, 말하는 태도들이 과거 문재인이나 민주당 인사들에게 하던 것과 아주 많이 다른 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준석이 매우 위태해 보이고, 그를 지켜보는 보수우파의 피로감이 커진다. 24일 예정된 성접대 관련 윤리위 결정과는 무관하게…….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