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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정신을 생각하며 사시나요?


입력 2022.07.18 07:07 수정 2022.07.18 13:53        데스크 (desk@dailian.co.kr)

‘새 헌정 시대’ 운위할 사람 따로 있지

포승으로 묶어 넘겨 준 사람의 항변

김진표 국회의장(왼쪽)과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데일리안 DB

<‘새 헌정 시대’ 운위할 사람 따로 있지>


김진표 국회의장은 정·관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눈이 저절로 크게 떠질 만큼 이력이 풍성하다. 부총리·장관·차관 경력 다섯 번에다 5선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21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 스타일을 흉내 내자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2004년 3월 11일 측근 비리 관련, 청와대 기자회견)임에 틀림없다.


그가 17일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갈등의 정치를 넘어 협력의 새 헌정 시대를 열어야 대한민국이 전진할 수 있고 국민의 삶도 지켜낼 수 있다”며 “그 출발은 개헌”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개헌론자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 그 말을 꺼내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분이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미래의 문을 여는 새로운 방식의 개헌, 국민통합형 개헌’운운하는 것은 듣고 있기가 거북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런 말을 하더라도 김 의장은 나서지 말아야 한다. 지난 5월 3일에 자신이 벌였던 대 활극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원내 최고령의원으로 국회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그 자리에 앉은 그가 한 일은 최장 9개월까지 여야 간 이견 조정을 시도할 수 있게 돼 있는 위원회를 단 17분만에 종료시킨 것이었다. 검수완박입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문을 열어 젖힌 것으로 문재인 정권에는 큰 공을 세웠을지 모르나 민주 의정사엔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그 달 24일 더불어민주당의 화상 의원총회에서 차기 국회의장으로 내정됐다. 그는 의총 후 기자들에게 “국회의 권위를 지키는 의장, 입법부 수장으로 할 말은 하는 의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 당적을 정리하는 날까지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국회의장이 되면 당적을 버려야 한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초당적 입장에서 입법부 수장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는 제도의 주문이다. 그 자리를 예약한 사람의 입에서 ‘민주당의 피’ 라는 말이 나왔다. ‘당적을 정리하는 날까지’만 그 피를 갖고 있다가 의장으로 정식 선출되면 피 갈이를 하겠다는 뜻이었을까?


연령적으로나 정치경력으로나 원숙미가 저절로 발산될 때이다. 그런데 정치의식과 화법이 이렇다. 골수 민주당원이어서 국회법의 취지를 짓밟아가며 안건조정위를 무력화 시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의총에서 당당히 차기 의장 내정자로 지명됐다는 말 아닌가. 의장 자리 보장받기 위한 성의였다면 정말 큰일 낼 사람이다. 그 훨씬 이전에, 전반기 박병석 의장에게 양보했을 때부터 이미 내정된 자리였다고 해도 문제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입법부 수장이 될 사람이 그런 폭거를 자행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의장이 되어 지금까지 사과는커녕 유감의 뜻이라도 표한 바가 없다.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가운데서도 간간이 반성과 사과의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 속에 김 의장의 목소리는 없다. 그러면서 ‘갈등의 정치를 넘어 협력의 새 헌정 시대’라니! 이런 인물이 대표 정치인으로 행세를 하는 한 우리 정치의 민주적 성숙은 기대하기 어렵다.


개헌을 논의하게 되더라도 김 의장은 뒤로 물러나 있을 일이다. ‘개헌자문회의’를 의장 직속으로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행여 자신이 개헌 논의나 연구를 이끌 생각은 말아야 한다. 좋은 학교 법학과를 나왔으니 자신과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이 헌법과 법률의 취지를 짓밟는 반의회적 행패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대는커녕 선봉장 역할까지 맡았으면서 이제와 ‘국민통합형 개헌’을 선창하고 있다. 양심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


<포승으로 묶어 넘겨 준 사람의 항변>


탈북어민 강제북송을 주도한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17일 ‘흉악범 추방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국가정보원이 최근 박지원·서훈 전 원장을 고발한 바 있다. 또 NKDB(북한인권정보센터) 인권침해지원센터는 정 전 안보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 정부 관계자, 국정원·통일부·경찰 실무자 등 모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강제북송이 안보실의 지휘로 강행되었음은 김 전 통일부장관의 2019년 11월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답변으로 확인됐었다.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지자 정 전 실장이 선제적으로 방어논리를 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시각으로는 ‘정치공세’다. 말하자면 여론전을 펼쳐서 수사의지를 꺾겠다는 의도일 수가 있다. 안보실은 대통령의 참모조직일 뿐이어서 행정처분권이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는 결론이 된다. 수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정 전 실장으로서는 반박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하겠다.


입장문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북송된 탈북어민은 동료 선원 16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흉악범, 엽기적 살인마들이다. △탈북민이나 귀순자가 아닌 도주자들이었다. 귀순의사를 관계기관 합동신문 과정에서 밝혔으나 진정성이 없었다. △자백만으로 이들을 처벌하기는 불가능하다. 처벌 없이 우리 사회에 편입될 경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해진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기 위해 북송한 게 아니다. 북한이 먼저 송환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다만 북측의 인수 의사를 먼저 타진했을 뿐이다.


법적인 문제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또 법정에서 따지면 된다. 검사나 판사가 아닌 국민을 향해 ‘혐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실의 시각처럼 ‘정치공세’로 보이기 십상이다. 단지 ‘감청’ 등의 방법으로만 ‘흉악범’임이 확인됐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북한 측과 정보 교환이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단 체포를 한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사를 벌였어야 했다. 합동신문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강제 북송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북측이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할 계획이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NLL을 무단 침범했기 때문에 체포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에 대한 처벌부터 하는 게 순서였다. 북측이 북송시간을 제시하면서 그 이후는 인수하지 않겠다고 압박이라도 해 왔다는 것인가. 왜 청와대가 직접 지휘를 하고, 억지로 북측에 신병을 넘겨줬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자백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데도 ‘흉악범’으로 규정한 것은 무리 아닌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96년 패스카마 15호에서 동료 선원 11명을 살해한 조선족 선원 6명에 대해 2심부터 변론을 맡았었다. 재판 후 그는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 때의 문 변호사는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정 전 실장은 입장문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전 정권을 부정하고 싶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부처가 협의하여 우리 법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한 사안을 이제 와서 관련 부처들을 총동원하여 번복 하는 것은 스스로 정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이야 말로 정치투쟁 선언이고 새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전 정권 부정’ ‘정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는 대단히 위험한 단정을 그는 서슴없이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 고무된 것인지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으로 국회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정치판도에 최대한 기대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헌법은 북한의 동포도 국민으로 인정한다. 탈북어민들도 거듭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포승으로 묶고 눈을 가려서까지 그들을 끌고 가 북측에 넘겨준 배경과 까닭을 국민은 알고자 한다. 그 진상을 밝히는 일에 정 전 실장, 서 전 원장, 김 전 장관 등 관계자들이 저항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당시 강제북송조치의 지휘부를 형성했던 사람들 아닌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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