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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판사들의 의도적인 재판 지연? ②]…"고법 부장승진제 폐지로 일 안 한다"


입력 2023.01.24 06:05 수정 2023.01.24 06:05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2022 대한변협 설문 조사 "변호사 10명 중 9명 재판 지연 경험…기일도 안 잡히는 경우 다수"

법조계 "법관 업무 동기부여 '고등법원 부장승진제' 김명수가 폐지…'일하지 않는 분위기' 조성"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간 인사 이동 힘들어져…승진에 한계, 인사 고과에 신경쓰지 않는 법관 양성"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판사 수도 주요 원인…여론 민감 정치적 사건·인물 재판, 의도적 회피 경향

ⓒgettyimagesBank

사건이 1심 선고조차 넘기지 못하고 해를 거듭해 쌓이는 재판 지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무엇보다 '고등법원 부장승진제' 폐지 등에 따른 판사들의 업무 동기 부여가 퇴색됐고, 일부 판사들의 직업의식·사명감 결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법관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다도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치권을 비롯한 여론의 지대한 관심이 쏠린 사안일 수도록 정치적 부담 등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하는 것이 우리 사법부에 한 관례가 되었다고 법조계는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지난해 실시한 '재판 지연과 관련한 불편 사례' 설문 조사를 보면, 변호사들 10명 중 9명이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 변론기일이 정해져 판사를 만나기까지 6개월 넘게 걸렸다는 응답은 25%였고, 소장 제출후 1심 선고까지 1년이 넘었다는 답변도 86%에 달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장 제출 후 2년이 지나도록 첫 기일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배당 받아 재판부에 직접 연락해 간신히 첫 번째 기일을 잡은 적이 있다"며 "재판기일 자체도 늦게 지정되지만, 지정 기일 내 재판 시간도 계속 연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재판 지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고등법원 부장승진제' 폐지를 꼽고 있다. 해당 제도 폐지에 따라 판사들의 업무에 동기 부여를 해주던 큰 요인이 사라졌고, 일부 판사들의 직업의식·사명감 결여가 결과적으로 집단 전체에 '일하지 않는 분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고법 부장 승진제도는 지방법원 부장 판사가 재판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 받아 고등법원 부장으로 승진하는 제도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2020년에 폐지했다. 줄세우기 인사나 경쟁 과다 등의 문제점이 야기됐기 때문인데, 대안 없는 졸속 폐지로 '일하지 않는 분위기 조성' 등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여상원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이후 판사들의 재판 열의가 엷어졌다"며 "과거에는 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판사가 많았다. 이제는 오후 6시까지 업무를 마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복잡한 쟁점이 담긴 사건도 금방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법무법인 LF 박성민 변호사는 "과거 판사는 좌배석, 우배석으로 시작해 단독, 부장을 거쳐 고등법원 배석, 부장으로 가는 일종의 정석적인 단계를 거쳤다"며 "그러나 고등법원 승진제도 폐지 이후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간 인사 이동이 힘들어졌고, 이런 까닭에 승진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느낀 법관들이 인사 고과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법관 수의 부족도 재판 장기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법조계에선 "우리나라 판사 수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라며 시급한 대책 마련을 거듭 요청했다.


대법원 '각국 법관의 업무량 비교와 우리나라 법관의 과로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법관은 2966명이다. 민사·형사 등 본안이 접수된 사건은 137만6438건으로 법관 1명당 사건 처리 건수는 464건이다.


법관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독일(89.63건), 프랑스(196.52건), 일본(151.79건) 등이다. 해외보다 법관 인원은 적고 사건 처리 건수는 많은 상황이다.


법률사무소 현강 이승우 변호사는 "재판 지연의 가장 대표적 원인은 판사 등 법원 인력 대비 업무 과중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사회 전반적으로 워라밸을 중시하는 풍조도 무시할 수 없다. 판사들이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할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아울러 단순한 인원 증원보다는 사건의 다양화, 복잡화에 따른 전문성을 가진 판사들이 늘어나고, 단독부 편성을 늘리거나 하는 구조적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여론이 주목되는 여의도발 정치적 사건과 인물 등에 대한 의도적인 재판 지연도 우리 사법부의 오랜 관례가 돼 가고 있다.


익명을 전제로 한 부장판사 출신의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솔직히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의 재판은 어떤 판결을 내도 어느 한편에서는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떤 판사가 빨리 결론을 내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여기에 판사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까지 더해져 재판 지연은 갈수록 배가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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