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도 이루지 못했던 세계선수권 3관왕 위업 달성
장미란 이후 여자 역도 최중량급 절대강자 리원원 상태 의심
결전 임박한 아시안게임에서 박혜정과 정상 경쟁 어려울 듯
‘제2의 장미란’을 꿈꾸는 박혜정(20·고양시청)이 세계선수권대회 최정상에 등극했다.
박혜정은 지난 16일(한국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펼쳐진 ‘2023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4㎏·용상 165㎏·합계 289㎏으로 3개 부문을 석권했다.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박혜정이 최초다. 4차례나 세계선수권 챔피언에 등극했던 ‘레전드’ 장미란(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경험하지 못한 위업이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아시안게임과 달리 각 부문에 메달이 걸려있다.
한국 선수가 세계역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에서 우승한 것 역시 2021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대회 손영희 이후 2년 만이다.
사우디 현지에서 대표 선수들을 지원한 대한역도연맹 관계자들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절대 강자’로 여겼던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3개 부문 세계기록(인상 148㎏·용상 187㎏·합계 335㎏) 보유자 리원원(23·중국)이 출전한 가운데 거둔 성과라 더욱 값지다.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기록 보유자 리원원은 ‘역도 여제’ 장미란 은퇴 이후 여자 최중량급을 ‘접수’한 최강자다. 지난해 12월 치른 ‘2022 국제역도연맹(IWF)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합계 311kg으로 압도적인 1위에 오르며 건재를 알렸다.
리원원은 지난 5월 진주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인상(140㎏), 용상(175㎏), 합계(315㎏) 금메달을 싹쓸이 했다. 당시 박혜정은 인상 (127㎏), 용상(168㎏), 합계(295㎏)를 들며 국제역도연맹(IWF) 체급 재편(2018년 11월) 이후 최중량급 한국 기록을 세웠지만 리원원에 밀려 금메달을 놓쳤다.
진천선수촌과 진주아시아선수권대회장에서 만났던 박혜정·손영희는 “다른 선수들이 장미란 선배를 보며 ‘거대 벽’이라고 느꼈다는데 우리가 리원원을 바라보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리원원이라는 거대 벽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리원원은 인상 1차 시기 130kg을 실패하고 2차 시기에 도전했지만 또 실패했다. 3차 시기를 앞두고는 기권했다. 지난 5월 진주아시아선수권에서 들어 올린 140kg에 한참 못 미치는 무게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권했다.
20대 초반 선수의 기량 쇠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로 하여금 팔꿈치 쪽 부상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이 눈앞인데 리원원의 지금의 상태를 볼 때, 박혜정과 정상적인 경쟁은 어려워 보인다.
선수로서 ‘절대 강자’의 부상은 안타깝지만, 박혜정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 또한 박혜정이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동안 박혜정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뼈를 깎는 훈련과 지도자들의 열의 속에 성큼성큼 세계 최정상권을 향해 뛰어왔고, 마침내 세계선수권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역도는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회 연속 노골드의 수모를 겪었다. 2010년 광저우 대회 여자 최중량급 장미란 이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박혜정이 항저우에서 금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장미란 이후 대형 스타에 목말랐던 역도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박혜정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