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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한총련 세대론에 대해 말하자면


입력 2023.11.21 05:05 수정 2023.11.21 05:05        데스크 (desk@dailian.co.kr)

386 세대 퇴진하면 한총련 세대 부상?

한총련, 학생사회로 보면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

학생운동, 제국주의·농촌·혁명 등 거부 방향으로 발전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재명 당 대표의 친위대 수준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막말 이후 386 운동권 정치 청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와 발맞춰 386 세대가 퇴진할 경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세대가 부상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이 있다. 특히 한총련 세대 중 일부가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와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한총련 세대의 부활을 또 다른 문제로 보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


한총련 세대론에 관한 대표적인 기사 중 하나가 아래 중앙일보 위문희 기자의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351)다.


이 글에서는 한총련 세대에 대한 다양한 변모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총련 세대 부상의 현실 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위 위문희 기자의 글에서 한총련 세대의 대표주자는 1997년 한총련 의장을 지낸 강위원, 1997년 남총련 의장을 지낸 정의찬, 1994년 경기대 총학생회장 구자필, 1998년 한총련 조통(조국통일위원회)위원장을 지낸 이석주 등이다. 그 외 국회의원 보좌관 등에 한총련 세대가 많이 포진해 있다


둘째, 학생사회로 보면 이들은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학벌사회이면서 그것의 역편향으로 학교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벌은 어떤 집단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학생운동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1986년까지 서울대·연대·고대 중심의 학생운동, 1988~1992년 고대·한양대 등 서울 중상위권 대학 중심의 학생운동, 1993년 이후 호남과 서울의 마이너 캠(캠퍼스) 중심의 학생운동을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학생운동이 사회발전과 거꾸로 갔기 때문이다. 즉 사회는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학생운동은 제국주의·농촌·혁명 등 그것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류에 민감한 서울·수도권 학생들이 1980년대 중반의 급진주의에서 빠르게 벗어났지만 지방·농촌의 학생들은 오랫동안 급진주의를 유지했다. 1996~97년이 되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서 한총련 중앙 집행부는 대부분 호남 학생들이 차지했고 한총련 의장은 명지대·영남대 등 대표성이 의심되는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덕분에 그 시절 한총련의 주요 간부를 했다고 해서 당시 학생사회를 대표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1990년대 중후반의 학생사회의 내적 요구와 지향을 그들이 옳게 대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1990년대 후반의 한총련은 습관적으로 전대협·한총련 운동을 계승한 수준이지 새로운 무엇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동시대를 살았던 여러 조류 중에서 서울대 진보학생연합 출신들이 정치권에 진출했다. 서울대 진보학생연합 출신에는 강병원·이탄희·박주민 등이 포함된다.


셋째는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다. 강위원의 경우 이석 치사 사건과 성추행 문제가 걸려 있고 정의찬도 이종건 치사 사건이 걸려 있다.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1997년 이종건 치사 사건은 매우 치명적이어서 정의찬이 출마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수준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학생운동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상황을 주도했기 때문에 위 사건들이 부각되지 않았다면 향후에는 학생운동에 불리한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이재명 당 대표와의 관계이다. 위에서 거론된 한총련 세대는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되었다기보다는 이재명 당 대표의 후견 아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지위에 대해 말하자면 한총련 세대의 성장과 부상은 이재명 당 대표의 친위대 같은 성격을 갖는다.


이재명 당 대표의 총애를 받고 있고 한총련 세대의 리더격인 강위원이 더민주혁신회의 사무총장을 하면서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이번에 가결표 던지는 의원들은 이런 표현이 조금 과격합니다.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저는 당원들이 그의 정치적 생명을 끝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는 강경 발언을 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한총련 세대의 정치적 진출이란 없다. 그것은 거의 마지막 국면에 와 있는 이재명 당 대표가 자기 친위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형성된 어떤 집단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속할 것처럼 보였던 군부도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숙청으로 군부의 정치 진출이 최종 국면을 맞았던 것처럼 386 정치 청산과 더불어 학생운동 출신자들의 정치적 진출도 조정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글/ 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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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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