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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잘 다루면 ‘자원’ 방심하면 ‘폭발물’…폐배터리 거점 수거센터를 가다


입력 2023.12.27 07:00 수정 2023.12.27 07:0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600조원 시장 바라보는 폐배터리 재활용

정부, 2030년 연간 폐배터리 10만개 예상

재활용 시장 성공은 ‘안전성’ 확보가 관건

정부 “민간 시장 활성화 마중물 역할”

한국환경공단이 성능검사를 마친 후 민간에 매각하기 위해 별도 보관 중인 전기자동차 폐배터리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친환경 자동차 대표 주자가 된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비싼 게 흠이다. 신기술 개발에 대한 보상을 차량 가격에 포함한 탓도 있겠으나, 전체 가격 3분의 1을 차지하는 배터리 값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다.


비싼 가격 탓에 자동차 배터리는 수명이 다해도 자원 가치가 높다. 자동차에 더는 쓸 수 없는 배터리도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하거나, 소형 이동장치(전기 스쿠터 등) 용도로는 충분히 쓸 수 있다. 희귀금속(리튬, 니켈, 코발트 등)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분해·추출해서 다시 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기도 한다.


자동차 폐배터리(사용 후 배터리)는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시장 가치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민간에서는 수년 내 폐배터리 시장이 수십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서는 올해 7000억원 수준인 시장 규모가 2030년 1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오는 2050년에는 6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시장 예측이 정확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전기차가 늘어나는 만큼 폐배터리 배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이면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300만 대에 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폐배터리만 연간 10만 개씩 나온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자원 가치만 보면 큰 시장이다. 환경부가 폐배터리를 ‘미래 폐자원’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런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터리가 갖는 태생적 한계인 폭발 가능성과 유해 화학물질 누출 위험성이다. 시장 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이러한 위험을 통제·관리하지 못하면 단순 폐기물보다 못하다.


한국환경공단이 운영 중인 수도권 미래폐자원 거점 수거센터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거점 수거센터, 폐배터리 회수·평가·보관·매각까지


환경부는 폐배터리 위험성을 해결하면서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전국에 4곳의 ‘미래 폐자원 거점 수거센터(이하 거점 수거센터)’를 운영 중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총 6곳이다.


한국환경공단에서 운영하는 거점 수거센터는 폐배터리 회수와 보관, 성능평가, 매각까지 총괄한다. 전기차 소유주가 차를 폐차한 경우 폐배터리를 반납하고 이는 거점 수거센터로 옮겨진다. 참고로 2021년 이전에 출고한 전기차 배터리는 폐차 때 모두 반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난 5일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를 찾았다. 전축 면적 1480㎡ 규모 1층으로 건축한 거점 수거센터는 폐배터리 1097개, 태양광 폐패널 130t을 보관할 수 있다. 폐배터리 가운데 규격이 평균보다 큰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동 보관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 폐배터리 처리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거점 수거센터로 옮긴 폐배터리는 성능평가를 거친다. 현재 폐배터리 성능을 평가하는 공인 기관은 한국환경공단(거점수거센터)이 유일하다.


성능평가를 마친 폐배터리는 재사용과 재제조로 구분한다. 성능이 60% 이상일 경우 다시 민간에 매각해 전기차 배터리 등으로 재제조·재사용 한다.


성능이 60% 이하인 경우 매각해서 전기 자전거나 전기 스쿠터 등 소형 전기장치 배터리로 이용한다. ESS로도 쓸 수도 있다. 배터리를 파·분쇄해서 리튬이나 코발트, 니켈 등 필요한 자원만 따로 뽑아내기도 한다. 추출한 광물은 양극재(일반 자동차 배터리 등) 재료로 쓰인다.


잔존 성능이 60% 이상인 폐배터리는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민간에 매각한다.


항온 체임버에서 성능 검사를 진행 중인 폐배터리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2030년부터 쏟아질 폐배터리, 수거센터 한계 올 수도


폐배터리는 1개를 검사하는 데만 최소 7시간이 소요된다. ‘항온 체임버’를 통해 성능을 검사하는 데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에는 항온 체임버가 두 대다. 따라서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에서 24시간 가동했을 때 하루 최대 6개까지 성능검사를 할 수 있다. 이는 수치로만 따질 경우이고, 실제로는 인력과 장비 가동률을 고려했을 때 4개 정도가 한계다.


전국 6곳(지자체 포함) 거점 수거센터에서 앞으로 수거·검사·분해해야 할 배터리는 최소 13만4962개다. 이는 반납 의무 대상 배터리만 계산한 수치다. 반납 의무가 없는 배터리까지 합산할 경우 25만대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에서 처리할 폐배터리가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등록·운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서울과 경기권을 통틀어 거점 수거센터는 한 곳뿐이다.


현재 수도권 거점 수거센터에는 4명의 근무자가 일한다. 일반직 1명과 공무직 1명, 기간제 2명이다. 이들이 하루 최대 4~6개 배터리를 처리해야 한다. 지금은 하루 1~2개 정도이지만 폐배터리가 쏟아질 2030년 이후에는 처리 용량을 초과할 수도 있다. 한국환경공단에서 내년까지 기술 개발을 통해 폐배터리 성능검사를 1시간까지 단축하려는 이유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현재 폐배터리는 (성능검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어서 우리도 내년까지 시설, 설비 쪽을 투자해 1시간 정도로 단축하는 걸 일단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배터리는 폭발과 유해물질 누출 위험이 있어 방재 시설을 갖춘 별도 보관 창고가 필요하다. 사진은 수도권 거점수거센터 폐배터리 보관 창고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민간 시장 안정화 전까지 정부가 ‘콘트롤 타워’


폐배터리 재활용을 정부가 주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과 성능검사의 신뢰성 때문이다.


폐배터리는 내부 용액이 화학적 특성상 기본적으로 화재와 폭발 위험성을 갖는다. 실제 폭발·화재 사고가 종종 일어나곤 한다. 이 때문에 전국 모든 거점 수거센터는 별도의 공간에 폐배터리를 하나씩 개별 보관한다. 개별 보관 공간에는 각각 소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능검사 역시 현재 공인된 기관은 한국환경공단뿐이다. 민간에서는 자동차 연식만으로 폐배터리 성능을 평가하는 수준이다.


민간에서는 성능평가가 끝난 폐배터리를 재사용하기 위한 플랫폼도 아직 미비하다. 제대로 된 성능평가도 없고, 안전성에 관한 위험도 남다 보니 폐배터리 시장을 아직은 민간 자율 운영에 맡기기 어렵다는 게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 설명이다.


다만 정부가 영구적으로 폐배터리 시장 전체를 관리할 수는 없다. 향후 시장 확장성을 생각한다면 민간이 가진 수요·공급 체계를 정부가 뒷받침하는 형태로 가는 수밖에 없다.


안전성과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은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민간 시장이 필요한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민간 시장이 틀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게 한국환경공단 설명이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아직은 폐배터리 회수, 검사 등 민간 시장이 초기 단계”라며 “나중에 폐배터리 반납 의무가 폐지될 때를 대비해 민간 중심 산업생태계 형성을 위해 제도와 기반을 구축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 역시 “아직 폐배터리는 제대로 된 재활용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각종 위험 물질을 누출할 수 있는 만큼 국민 안전 등을 고려했을 때 폐기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폐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항온 체임버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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