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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국민에 부추긴 정부… 이제 누가 전기차 살래? [기자수첩-산업 IT]


입력 2024.08.12 06:00 수정 2024.08.12 07:03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살 땐 친환경 보탠 국민, 불 나니 차주 파산 위기

보험사·제조사 떠넘긴 책임소지… 정부는?

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분명히 그랬다. 내연기관 시대가 끝나고 이제 전기차의 시대가 온다고. 정부는 전기차 전환 목표를 내걸고, 수백만원의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고, 각종 전기차 혜택에 전기차 전용 주차공간까지 제공한다고 했다.


국민들이 전기차를 사게 만들기 위해 제조사에도 각종 지원을 내걸었다. R&D(연구개발) 지원금은 물론 전기차 공장을 세우면 세액공제를 해주는 혜택도 줬다. 소비자들에게 전기차를 사면 보조금을 쥐어주고, 전기차를 많이 팔면 혜택까지 준다니 이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에 공장이 없는 수많은 수입차 업체들도 전기차 출시에 힘을 줬다.


최근 2년 사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니 차를 바꿀 때 전기차를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은 국민이 있을까. 전기차의 불편함이 싫어 하이브리드로 눈을 돌리는 '캐즘(일시적 정체기)' 현상이 일어난 이유도 결국은 전기차를 사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전기차가 지하주차장에서 주차상태로 자연발화돼 주변 차를 전소 시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아파트의 수도배관과 전기 배선이 녹아 단전·단수로 이어져 추산된 피해액만 100억 이상이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재난이다.


이 사고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가 됐다. 여론은 어느 제조사의 전기차인지, 보험사와 차량 제조사, 배터리 제조사, 스프링 쿨러 작동을 멈춘 관리 사무소 중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 지를 가려내는 데에 집중됐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 이 사고를 조금 더 거시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자. 전기차를 이렇게 열심히 팔게 된, 화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이 언제든 구매할 수 있게 된 건 왜일까.


'전기차를 팔지 않았으면 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말이 아니다. 전기차를 파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가 보험사, 제조사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심지어 차량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대피소는 하나은행이 운영했다. 보조금 지원과 각종 혜택으로 전기차 구매를 부추긴 정부는 어디로 갔을까?


차주는 이제 얼굴 들고 아파트 근처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단지 보조금 받고 환경 생각해 전기차 샀을 뿐인데 대역죄인이 됐다. 앞으로 누가 감히 전기차를 살 수 있을까?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정책보다도 우선돼야할 것은, 차주를 보호하는 제조사와, 보험사, 그리고 국가가 '전기차를 사도 괜찮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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