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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게 노무현은 무엇인가?


입력 2009.05.02 09:14 수정        

<기자수첩>95년 종로 의원 선거로 맞붙기 시작으로 애증교차

시장시절 ´마음에 든다´ 발언에 곤혹도…판결 이후도 ´관심´

2005년 10월의 일이다.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냐하면 노무현이다.” 이 한마디로 이 대통령은 두고두고 곤욕을 치렀다.

당시 이 대통령은 “발언이 거두절미 돼 보도됐다”고 해명했지만, 이회창 전 총재는 노발대발했다. 결국 이회창이 2007년 대선에 출마하는 빌미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4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돼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대통령 재임 당시 미화 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뇌물 수수’ 혐의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14년 만이다. 노 전 대통령 본인에게는 물론 대한민국 역사에도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애증(愛憎)이 교차했다. 1995년 15대 총선에서 이명박은 서울 종로에서 노무현과 맞붙는다. 굴곡의 시작이다. 이명박은 당선됐고 노무현은 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명박은 98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내놓게 되고, 그 자리를 다시 노무현이 차지했다.

몇 해 뒤 이명박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당선됐고, 그해 말 치러진 대선에서 노무현은 보무도 당당하게 대권을 거머쥐었다. 둘은 그렇게 화려하게 컴백했다.

2005년 10월 1일 두 사람은 47년 만에 물길이 열린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나란히 앉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고 강력한 의지로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시장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한껏 치켜세웠고, 이명박 시장 역시 “청계천 복원 계획에 대해 국무위원들의 이견을 극복하고 힘을 실어준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를 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화기애애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둘의 관계는 또 틀어지기 시작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경제를 망친 대통령”으로 규정,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전 한 강연에서 “이명박 감세론 속지마라” “한나라당 집권, 끔찍하다”는 등의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선거법 위반으로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이 통과시킨 이른바 이명박 후보의 의혹과 관련한 ‘BBK특검법’에 대해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도 두 사람 간 갈등의 한 부분이 됐다.

그러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다시 둘은 잠시 화해모드로 들어갔다. 선거 일주일 뒤인 12월 28일 노무현은 이명박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퇴임해서 정치 활동을 할 지 안 할지 모르겠는데, 퇴임 후에도 정책비판은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직에 대한 권위와 신뢰를 지키는 데는 도움을 드리겠다”고 했고, 이 당선자는 “후임자가 전임자를 예우하고 잘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200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마지막 악수를 나눈 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그러나 곧바로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둘러싸고 전·현 정권 간에 갈등이 폭발했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가 안 하고 간 것을 설거지 한 것”이라며 ‘전(前)정권 설거지론’을 들고 나왔고,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양심 없는 사람들”이라고 받아쳤다.

쇠고기 문제는 촛불시위로 번지면서 국정을 마비시켰고, 집권 초반 이 대통령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청와대의 전(前)정권을 향한 미움과 원망도 커져갔던 게 사실이다.

정권퇴진론까지 나오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퇴진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헌정질서에 맞지 않고 민주주의 질서속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은 5년간 열심히 국정을 이끌어 나갈 사람이며 요구할 건 확실히 요구하되 국민의 뜻을 최대한 헤아려서 일하도록 잘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 대통령에게 위안은 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핵심사업이었던 지방균형정책을 이 대통령이 손질하려 하자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해, 사사건건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혁신도시 건설 재검토 논란이 일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잘못 건드린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내려간 후 관광객들을 상대로 연일 즉석연설을 했고, ‘사람사는세상’과 토론사이트인 ‘민주주의2.0’ 등을 개설해 현실정치에 대한 발언을 높여 갔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말 검찰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형 건평 씨가 구속되고, 노무현의 기는 한풀 꺾였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아들과 부인까지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간간히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버티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달 22일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며 “나를 버리라”고 한 후 홈페이지 폐쇄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30일 검찰에 출두하기 전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 전 대통령 소환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짤막한 논평을 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두고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과 이명박, 이명박과 노무현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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