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구미호의 철학적 문화심리적 정신도 중요
전통적으로 ‘3’ 은 길수(吉數)다. 복과 부를 가져다주는 숫자인데 '3'보다 더 길한 숫자가 있다. '9’다. '9'는 ‘3’이 세 번 곱해져 얻은 수이니 정말 큰 길수가 되는 셈이다. 한편, 9는 '오래 산다'는 뜻의 ‘구(久)’와 비슷하다. 고대의 황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9자와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곤룡포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있다. 구룡포(九龍袍)라고도 한다. 자금성에는 9999개의 방이 있다. 우 임금은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누었다. 9는 음양오행에서 금(金)을 상징하기도 했다. 신라는 전국을 9로 나누었고, 9서당이라는 군사제도를 만들었다.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육오(陸吾)'라는 신은 사람의 얼굴에 아홉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9'는 꽉 채워진 숫자다. 꽉 채워졌기 때문에 극상, 다른 말로 하면 이미 꺾어짐을 상징한다. 대개 ‘아홉수’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9'가 너무 길하니 액운이 따를 수 있음을 경고한 말이다. 수비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9는 용서와 공감, 성공을 담은 숫자라고 한다. 9라는 숫자는 황제나 귀족들만 소중하게 여긴 것은 아니다.
전례 민속으로 아홉 차례가 있는데 대보름날 모든 행위를 아홉 번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한약재 수치법과 전통자의 제다법은 모두 구증구포(九烝九曝)다. 백범 김구 선생의 이름은 본래 거북 구(龜)였으나 나중에는 아홉 구(九)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는 열 사람이 있으면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는 겸손의 뜻이 담겨 있었다.
여하간 아홉 마리의 용과 같은 쓰임을 통해 보듯 구(九)라는 숫자는 평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꼬리 아홉 달린 동물은 상서로운 것을 의미한다. 대개 여우의 경우 꼬리가 특징적이기 때문에 구미호(九尾狐)를 말한다. 영어의 ‘폭스’는 ‘꼬리’라는 의미다.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여우는 색깔이 중화(中和)이고, 여우의 앞은 작고 뒤는 크며, 수구(首丘)하는 동물이라며 그 세 가지 덕을 높였다. 수구는 수구초심을 약어로 죽을 때 고향을 향하며 죽는다는 겉뜻을 담고 있다. 그 속뜻은 본향을 잊지 않거나 초심으로 돌아감을 말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여우를 긍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는 여우에 대한 인간의 시기 때문인지 모른다.
중국의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호가호위(狐假虎威)’고사에는 호랑이를 속이는 여우의 교활함이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매우 지혜로운 동물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우에 대한 묘사는 이렇게 사람들의 이중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여우를 간교한 동물로 묘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머리 좋음을 선망하고 질투한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는 바로 이러한 여우의 현명함을 상서로움으로 반영한 말이다. 이는 고대일수록 여우를 긍정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각종 전각을 보면 서왕모(西王母)라는 신을 모시는 영물로 구미호가 반드시 등장한다.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는 서왕모 주변에서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동물로 등장한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전각화에는 삼족오, 두꺼비와 함께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꼬리가 아홉개로 갈라진 여우이다.
<서응도(瑞應圖)>에 하늘과 땅과 동서남북이 하나로 되는 육합(六合)에 구미호가 나타난다고 되어 있다. <백호통(白虎通>에 임금의 덕이 짐승들에게 이르면 구미호가 등장한다고 했다. 즉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것이 구미호다. 또한 구미호는 예지적인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오월춘추(吳越春秋)> ‘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에는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는 우왕이 곧 장가갈 것이라는 점을 구미호가 예언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구미호는 동이족의 문화적 상징코드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산해경>의 ‘대황동경’에 “청구국(靑丘國)에는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九尾狐)가 있다.”고 했다. 청구국은 우리나라지역을 말한다. 구미호의 문화적 코드가 우리 문화의 것이고 이것을 폄하하는 것은 중국의 사대주의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구미호가 동이족의 문화코드로 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던 고대인들의 사유체계와 같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에 이르러 구미호가 한낱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존재로 획일화된 것에 대해서 문화적 조작이라는 문제제기가 전혀 맥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남자를 홀리는 존재쯤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 특히 남자를 홀리는 고혹한 여성적 존재로 굳어진 것은 아무래도 주왕과 달기를 다룬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던 데서 기인할 것이다.
육조 시대 지어진 이라(李邏)의 천자문(千字文)에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부인 달기를 구미호로 묘사하고 있다. 달기는 은나라를 망하게 만든 요녀로 묘사되는도 하는데, 이러한 비유에 여우에 대한 이중심리가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무왕(武王)은 이 달기를 이용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운다.
주나라는 공자가 이상 사회로 삼았던 나라였다. 주나라 건설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구미호라는 상서로운 동물로 비유된 것이다. 즉 상서로운 구미호가 나타나서 은나라의 멸망을 이끌었으니 당연한 것이겠다. 유교의 문화가 정당화될수록 구미호가 은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당연해진다. 그런데 여성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 건설에 도움이 되었다면 구미호가 상서로운 존재이어서는 곤란한 것이 가부장적 유교론자들의 시각이겠다. 달기는 매우 현명하고도 교활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를 유혹하는 치명적인 팜므파탈이 된 것이겠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여우에 비유된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이후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가 되면서 구미호는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격하된 감이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70년대 <전설의 고향>이라는 텔레비전 공포 사극이 전국적인 대인기를 누리면서 문화적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구미호의 주인공은 팜므파탈의 여성적 존재였다. 최근 월화수목에 걸쳐 구미호를 접할 수 있다. 월화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과 수목 드라마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때문이다. 월화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은 고전적인 이야기 원형에 충실하면서도 구미호를 어머니로 만든 것이 이채롭다.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는 구미호 이야기의 원형만 빌려오고 대부분을 현대적 이야기로 바꾸었다. 두 작품은 각각 클래식과 팝의 변주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앞에서 다룬 맥락을 볼 때 모두 구미호의 문화적, 철학적 본령에서는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구미호가 단지 남성이나 유혹하는 미모의 소유자로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성을 섹슈얼리티로 상품화하는 대중문화산업체계에 구미호의 상징 코드가 포획되었기 때문이다. 포획된 구미호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풀어주고 이시대의 화두를 던져줄수있는 다양한 면모의 캐릭터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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