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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감독, 1500승에 가려진 승부사 고독


입력 2013.08.04 09:12 수정 2013.08.04 10:15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감독 1500승,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기록

저조한 한화 팀 성적 잣대로 평가해서는 곤란

전인미답 1500승 고지를 밟은 김응용 감독. ⓒ 연합뉴스

'1500번의 승리' 평생을 승부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스포츠인들도 쉽게 넘보기 힘든 거대한 기록이다. 한국프로야구사 30년사에 아무도 내딛지 못했던 미답의 경지에 김응용 한화 감독 이 첫 발을 내딛었다.

김응룡 감독은 3일 마산 NC전에서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500승 고지에 올랐다. 김 감독은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 2001년에서 2004년까지 삼성 지휘봉을 잡았고, 8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올 시즌 한화를 통해 복귀해 3개 구단에서 총 23시즌에 걸쳐 1500승 1195패 66무, 승률 0.543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만 10회나 기록했다. 말이 필요 없는 한국야구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위대한 기록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김응용 감독은 마음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소속팀 한화는 24승 1무 57패(0.296)로 승률 3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한화는 개막 직후 줄곧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응용 감독으로서도 프로 지도자로 입문한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현재 1위 삼성은 승수가 한화의 두 배가 더 넘는다.

한화의 성적부진으로 인하여 1500승 고지 등정도 예상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해태와 삼성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을 밥 먹 듯이하며 우승 청부사로 불렸던 김 감독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위상이다. 팀 성적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김 감독도 자신의 개인통산 최다승 기록에 관심을 둘 상황이 아니다.

올 시즌 한화가 극심한 성적부진에 시달리면서 김 감독의 신화적인 명성과 지도력에도 많은 흠집이 생겼다. 일부 팬들은 김 감독이 오히려 한화를 퇴보시키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사실 성적부진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올 시즌 한화는 경기내용이나 유망주 육성 면에서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응용 감독이 눈앞의 1승에만 연연하여 리빌딩을 외면하고 소수의 주전선수들만 혹사시키는 ‘80년대 야구’를 한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응용 감독의 1500승 대기록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히 고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말 가장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은 바로 김 감독 본인이다. 사실 김 감독은 주변에서 1,500승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담스러워했다. "팀 성적도 좋지 않은데 개인 기록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아쉬운 것은 최근 한화에서의 부진으로 김 감독이 과거에 세운 업적까지도 폄하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인터넷 야구게시판과 SNS 등에서는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 시절 세운 성적을 깎아내리는 의견들도 등장하고 있다. 젊은 팬들 중에서는 80~90년대 김응용 감독의 전성기를 직접 보거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데이터와 막연한 추론만으로 경솔하게 언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루하루를 치열한 승부의 세계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감독의 고충은 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해태와 삼성 시절, 김응용 감독이 항상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편하게 야구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알고 보면 그때도 김 감독은 매일같이 성적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쳐야했다.

김응용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한화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감독 개인의 책임만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도 "앞으로의 1승과 내 기록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며 서슴없이 단언할 정도였다. 김 감독의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오히려 한화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화제로 떠오를 때였다.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승부욕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1500승조차도, 김 감독이 걸어온 30년 감독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다만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가져온 감독도, 당장의 팀 성적에 따라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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