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담합’ 발렌틴 56홈런 기록 또 저지?
30여 경기 남겨둔 가운데 벌써 51홈런
일본 국수주의, 신기록 저지할지 관심
일본야구계가 '괴물 용병'의 홈런 열풍에 술렁이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거포 블라디미르 발렌틴(29) 때문이다. 발렌틴은 지난 28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2013시즌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와 경기에서 시즌 51호 홈런포를 가동했다.
일본프로야구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1964년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2001년 터피 로즈,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가 세운 55개다. 8월에만 무려 17개의 홈런을 터뜨린 발렌틴은 이날 16개였던 일본프로야구 월간 최다 홈런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무려 32경기나 남겨둔 발렌틴은 5개의 홈런포만 더 쏘아 올리면 일본야구 역사를 넘어 아시아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세우게 된다.
발렌틴의 도전이 남일 같지 않은 것은 바로 아시아 최다홈런 기록보유자(56개)가 바로 이승엽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삼성 시절 2003년 왕정치를 뛰어넘는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작성한바있다.
물론 일본야구계에서는 한국에서 작성된 이승엽의 홈런기록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발렌틴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야구에 있어 오 사다하루는 전설이자,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사중 하나다. 바로 자신들의 안방에서 그것도 외국인 타자에게 아시아 최다홈런 기록의 타이틀을 뺏긴다는 것은, 일본야구로서는 자존심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발렌틴 이전에 오 사다하루의 기록에 도전했던 로즈와 카브레라가 나란히 55홈런에 멈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두 선수는 나란히 5경기를 남겨놓고 있어 신기록 달성이 유력시되었으니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건 뛰어난 투수도, 자신의 부상이나 슬럼프도 아닌 바로 일본야구계의 암묵적 담합이었다.
두 선수가 대기록에 근접하면서 일본야구계는 노골적인 텃세로 기록 달성을 방해했다. 투수들은 정면승부를 회피하는 것은 기본이고, 비신사적인 사구도 서슴지 않았다. 심판은 편파적인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심지어 냉철해야할 일본 언론과 방송 중계에서조차 '외국인 선수들에게 일본야구의 위대한 기록이 침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한 선동을 하는 일도 있었다. 스포츠에서 삐뚤어진 애국심과 저급한 외국인 차별주의가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유치한 추태였다.
발렌틴은 산술적인 페이스로는 올 시즌 60홈런 이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50홈런 고지를 돌파하는 시점부터 일본야구계에서는 심상치 않은 경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서서히 발렌틴과의 정면승부를 피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야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쳐야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가하면, '어떻게든 오 사다하루의 기록만은 지켜야한다'며 국수주의적인 자존심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만일 발렌틴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하여 또다시 제2의 로즈나 카브레라가 된다면, 일본야구계는 또 한 번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한 사례로 역사에 오명을 남길 전망이다. 이승엽의 아시아홈런 신기록이 걸려있는 한국 역시 일본야구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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